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안이 사실상 동결됐다. 0.06% 증가율로 95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기초연구비, 혁신 성장 분야 투자를 늘리지만 다른 부문 예산이 무더기로 삭감됐다. 정부가 '혁신 성장' 구호는 외치지만 핵심 경쟁력을 좌우할 R&D 투자에 인색한 모양새다. 이 같은 난맥은 문재인 정부 초기 계획과 달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가 지출 한도 설정 권한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제2회 국가과기자문회의 심의회의를 통과한 '2019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 따르면 내년 R&D 예산은 15조7810억원이다. 이는 올해 예산 대비 95억원(0.06%) 늘어난 것으로, 거의 동결 수준이다. 지난해 심의한 2018년도 R&D 예산 증가율(1.3%)에도 미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기초연구비 인상, 혁신성장 분야 경쟁력 강화를 기치로 내세웠다. 내년에 뭉칫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R&D 예산 동결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과기계 시선이다.
국과심 심의를 통해 확정된 2019년도 국가 R&D 예산 배분·조정안은 기획재정부로 통보된다. 기재부는 인문사회 R&D 등 예산을 더해 내년도 정부 전체 R&D 예산안을 확정, 국회로 송부한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추가 삭감 여지가 있어 마이너스 증가율 우려도 따른다.
국과심 심의안에서 핵심 국정 과제인 기초연구비 인상은 체면치레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기초연구사업 예산을 지난해 1조2600억원에서 2022년도에 2조5200억원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매년 2520억원 증액해야 한다. 올해는 1600억원 늘리는데 그쳤다. 내년도 배분·조정안에서 2500억원을 증액했지만 전체 예산을 늘리는 '플러스 알파'가 아닌 타 사업 몫을 가져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벤처부 R&D 예산이 약 3300억원 줄었다.
과기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 방향과 달리 R&D 예산 한도가 늘지 않은 상황에서 주요 사업 예산을 늘리다 보니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사업은 모두 예산이 깎였다”면서 “정부 계획과 달리 장기 예산이 필요한 R&D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기계는 과기혁신본부가 R&D 예산 배분 및 조정 권한만 쥐고 지출 한도 권한을 보유하지 못하는 구조상 한계를 지적했다. 정부는 당초 과기혁신본부가 기획재정부와 지출 한도를 공동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논의 과정에서 기재부와 야권 반발에 부닥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올해 국가 R&D 편성 과정에서 과기혁신본부는 시작부터 운신할 폭이 좁았다. 궁여지책으로 과기 기본계획 주요 추진 과제와 성과 달성을 위해 전략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 예산을 우선 배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 대신 투자 효율화를 통해 1조2000억원을 절감하기로 했다. 결과 우선 순위에서 밀린 R&D 사업은 상당 수 예산이 삭감됐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기부가 지출 한도를 공동으로 설정하지 못하면 과기부가 매년 R&D 배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기재부도 복지 예산 증가 등으로 과기 예산을 계속 늘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궁극으로는 두 부처가 지출 한도를 공동 설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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