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법원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메모리칩을 중국에서 판매 금지하는 예비판정을 내렸다. 미국과 중국이 상대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전쟁을 예고한 가운데 나온 판결이어서 파장이 주목된다. 한국 반도체 업계에서는 마이크론 판매 차질에 따른 단기성 반사 이익을 기대하면서도 '중국 리스크'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로이터 등 외신은 3일(현지시간)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중급인민법원이 마이크론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관련 제품 26종 판매를 금지하는 예비판정을 내렸다고 대만 파운드리 업체 UMC 관계자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마이크론은 UMC 및 이 회사와 합작한 중국 D램 회사 푸젠진화집적회로공사(JHICC)가 자사 메모리 특허 및 영업 비밀을 복제해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UMC와 JHICC는 이에 맞서 지난 1월 마이크론이 D램 기술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중국 푸저우 중급인민법원에 판매 금지와 2억7000만위안(약 450억원)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 법원은 이에 대한 예비판정을 내린 것이다.
중국 법원 판결은 여러 분석을 낳고 있다. 우선 미·중 무역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미국과 중국은 오는 6일부터 연간 500억달러 상대국 수입 제품에 25% 추가 관세를 순차 부과하기로 했다. 추가 관세 부과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이 같은 예비판정을 냈기 때문에 일종의 '협상카드'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지금 중국 경제도 좋은 상황이 아닌 가운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마이크론 제품을 판매에서 제외하면 자국 세트 기업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면서 “예비판정을 확정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 유출 논란에 대한 중국 태도도 관심사다. JHICC는 UMC 32나노 28나노 D램 기술을 이관 받아 중국 내에서 연내 양산을 시작하기로 했다. JHICC는 대만 마이크론에 피인수된 렉스칩 출신 찰레스 고가 이끌고 있다. 렉스칩 출신 인력이 JHICC로 많이 넘어갔다. 마이크론은 렉스칩에 근무하던 전직 직원이 설계도면 등을 USB에 담아 UMC에 건넨 것으로 보고 소송을 걸었다. 이에 대한 반격 소송에서 '오히려 당신들이 베꼈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중국 당국이 기술 탈취 의혹을 받고 있는 자국 기업을 보호했다는 인상이 짙다.
한국 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한국인 기술자 상당수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반도체도 그 과정을 밟고 있다. 기술 유출 관련 소송을 벌이면 마이크론 사례처럼 외려 반격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중국은 최근 메모리 가격이 계속 오르자 주요 업체가 가격을 담합했다며 조사를 시작한 바 있다. 이 역시 중국 실력 행사로 보는 시각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법원과 반독점 당국을 활용해 기술 탈취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가격마저도 인위로 내리려 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대안이 없어서 전면전은 못 펼치지만 어느 정도 기술력을 확보하고 생산을 시작하면 이 같은 견제는 더욱 노골화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