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업계가 청와대에 업종 특성을 반영한 탄력적 연구개발비 회계처리를 요청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연구개발비 비용처리를 강력하게 주문하면서 업계 혼란과 재정·심리적 압박이 심화됐다는 이유다. 바이오기업 3분의 1은 매출 없이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모두 비용으로 처리하면 순식간에 '적자기업'이 된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바이오협회는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에 탄력적 회계기준 적용을 골자로 한 업계 의견을 전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차바이오텍 등 바이오기업에 칼을 겨눈 금융당국보다 청와대에 직접 건의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바이오산업을 4차 산업혁명 중심 산업으로 육성한다고 하지만 최근 정부 방침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 한다”면서 “회계처리 방침을 포함해 주 52시간 시행 등 전반적으로 업계 애로사항을 종합해 전달했다”고 말했다.
3월 차바이오텍은 연구개발비 76%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해 논란을 빚었다. 비용으로 처리할 것을 자산으로 처리하면서 영업이익을 뻥튀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강화된 기준으로 새롭게 처리한 결과 8억8100만원 적자로 수정,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금감원은 차바이오텍을 포함 바이오·제약 10곳에 대해 영업이익 뻥튀기 여부를 감리하겠다고 발표해 업계 전체로 이슈가 확산됐다.
업계는 바이오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에 불만이다. 신약, 의료기기 등 바이오업종 대부분이 R&D만 5~10년 가까이 걸린다. 국내 바이오기업 33%가 매출이 없을 정도로 R&D 기간이 길다. 기업 유지와 R&D 고도화를 위해 투자유치가 생명이다. 재정지표를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임상3상 등 상업화가 가까워지면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했다.
금융당국이 연구개발비 자산처리 적절성을 조사하면서 시장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사실상 자산이 아닌 비용으로 처리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회계, 바이오 업계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보수적 회계처리가 이어지면서 투자 위축 등 우려도 제기됐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차바이오텍 등 바이오기업을 연이어 감리하면서 시장에서 바이오기업 회계처리를 더 보수적으로 한다”면서 “금융당국이 보내는 신호가 아닌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기준을 명확히 이행하되 바이오산업 특수성을 고려해 달라고 청와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K-IFRS에 따르면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인식하려면 △무형자산을 완성할 기술적 실현 가능성 △무형자산을 완성해 사용하거나 판매하려는 기업 의도 △무형자산을 사용하거나 판매할 기업 능력 등을 충족해야 한다. 협회는 이 기준을 명확히 적용해야 하지만 바이오산업에는 탄력적 예외조항 적용도 검토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