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삼성디스플레이가 중국으로 이직한 전 직원을 상대로 제기한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중국 BOE로 인력이 다수 이동했고 앞으로도 인력 유출이 예상되자 핵심 임원이 아닌 일반 직원에게도 소송을 제기, 일종의 경고 조치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수원지법(민사31부)은 삼성디스플레이가 책임급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8월 퇴사한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퇴직 후 2년 동안 경쟁사나 그 협력사에 취업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A씨가 이를 어길 경우 하루 1000만원씩 삼성디스플레이에 지급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A씨는 퇴사 당시 국내외 경쟁사에 취업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재직 시 얻은 영업 자산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영업비밀 보호 서약서'를 삼성디스플레이에 제출했다. 국내 선박안전관리 회사에 취업하겠다고 밝혔지만 한 달 뒤 중국 청두에 있는 청두중광뎬과기유한공사(COE)에 입사했다.
COE는 중국 패널사 BOE 협력사다. 법원은 COE 대주주가 BOE와 같고 본사 건물이 BOE 생산 공장에서 6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점에 주목했다. BOE가 A씨를 협력사에 우회 취업시켰다고 보고 사실상 전직으로 판단했다. 청두에는 BOE가 첫 6세대 플렉시블 OLED 양산에 성공한 B7 공장이 있다.
그동안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인력 상당수가 중국 주요 패널사로 취업했다. 특히 삼성디스플레이는 6세대 플렉시블 OLED 독보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중국 패널사의 영입 인력 대상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 2016~2017년 2년에 걸쳐 인사 이동과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상당수 책임급(부장급) 인력이 중국 경쟁사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BOE는 삼성디스플레이 인력 확보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파악된다.
BOE는 2013년 오르도스에서 5.5세대 리지드(경성) OLED 양산에 도전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이후 청두에 6세대 플렉시블 OLED 공장을 지어 양산 가동을 하고 있다. 양산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이 분야 경험이 풍부한 삼성디스플레이 인력 확보에 주력했다. BOE 생산량이 아직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화웨이, 엘리펀트 등 현지 스마트폰 고객사를 조금씩 늘려 나가고 있다.
업계 복수 관계자는 “BOE B7 공장에 삼성디스플레이 직원 100여명이 근무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한국 인력이 많다는 뜻이다. BOE가 B7 양산 가동을 한 것도 한국 인력 공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와 LCD 사업 모두에 걸쳐 주요 기술이라고 판단되는 업무 대상자가 퇴사할 때 영업비밀 보호 서약서를 받는다”면서 “모든 퇴사자 행보를 일일이 파악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한국 패널사는 물론 주요 협력사까지 중국의 기술·인력 확보 타깃이 된 지 오래인 만큼 퇴사한 전문가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기업과 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기업은 퇴사 대상 임원을 주요 1·2차 협력사에 우선 소개시키는 등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실무 개발·생산 전문가까지 모두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은 최근까지 OLED 기술 인력 중심으로 '삼삼오오'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년 근무에 연봉 3배, 5년 근무에 연봉 5배 조건을 내거는 것이다. 국내 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사라졌거나 경제 상황,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중국 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상당하다.
국내 대학 한 교수는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이 아닌 중국 BOE에 취업하고 싶다는 학생도 있다”면서 “국내 기업보다 중국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
배옥진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