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아파트 주차장에 구청 신고 없이 설치한 전기차 충전기를 모두 철거하라는 방침을 내려 전기차 소유자와 충전기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안전이나 입주자 동의 등의 문제가 없어도 신고 절차가 누락된 것만으로 철거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논란이 커졌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친환경차 확대를 위해 수소버스 보급 확대 방안을 언급했지만, 정작 이제 막 확산되기 시작한 전기차에는 규제부터 앞세운다는 비판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최근 아파트 주차장의 전기차 충전기가 '공동주택 관리법'에 의해 '증축'에 해당하는 신고 대상이며, 시장·군수·구청장 등에게 설치 전 신고하지 않았다면 원상복구(철거)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지난해 개정된 공동주택 관리법 시행령의 '공동주택의 행위허가 또는 신고의 기준'은 고정형 전기차 충전기를 신고 대상이라고 명시했다. 전기자동차의 고정형 충전기 및 충전 전용 주차구획을 설치하는 행위가 입주자 대표회의의 동의를 받은 경우 신고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국토부는 신고를 하지 않은 충전기는 모두 철거하고 신고한 후 다시 설치하라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기 뿐만 아니라 증축에 해당하는 모든 시설물은 신고 대상이고 전기차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원상복구를 해야 한다는 법규에 따라 무조건 철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신고를 하지 않은 충전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개인은 물론 환경부 보조금을 받아 설치한 사업자조차도 입주자 대표회의 동의만 받고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환경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입주자 대표회의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신고 조건은 충족했지만 신고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충전기들이 많은 셈이다.
업계는 이 같은 미신고 충전기가 2만여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수 천에서 수 만 대에 달하는 충전기를 모두 떼었다 다시 설치해야 할 판이다. 충전기 설치 비용은 대당 200만원 안팎이다. 철거 비용을 무시한다고 해도 다시 설치해야 할 충전기가 1만대라고 가정하면, 추가 비용이 200억원에 달한다. 전기차 소유주 개인이 설치한 충전기도 수 천 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도 국토부 입장은 강경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입주자 3분의 2 이상 동의에서 입대위 대표 동의로 완화하고, 도면도 전자도면이 아니라 수기도면까지 허용해 주며 최대한 규정을 완화해 준 상태”라며 “소급적용은 안 하는 것이 법의 원칙”이라고 답했다.
국토부의 강경한 원칙에 일부 사업자들은 실제로 철거했다가 구청 신고 후 그대로 다시 설치하기도 했다. 추가로 수백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전기차 개인 소유자는 난감한 상황이다.
관련 업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전기차 확산을 위해 충전소나 충전기 설치가 시급한 마당에 안전 문제도 아닌 절차상의 문제로 충전기를 철거하라는 것은 친환경차 보급 정책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충전소 구축 대안으로 환경부는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아파트나 사무실이 많은 건물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충전기 업계 관계자는 “정부 보조금까지 받아서 설치한 충전기가 문제가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문제가 된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한 두 대도 아니고 무조건 철거하고 다시 설치하라니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