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위협하는 중국 BOE를 두고 업계에서는 “한국이 BOE를 키웠다”고 꼬집는다. 당시 BOE가 상당한 TFT-LCD 기술력을 갖춘 하이디스를 인수하면 단시간에 기술력을 보강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술 중복, 막대한 인수 자금 부담 등을 이유로 국내 업체들은 난색을 표했다. 결국 하이디스는 BOE에 넘어갔고, 수 년 뒤 BOE는 하이디스를 부도처리 함으로써 '기술 빼먹기' 논란이 불거졌다.
막연하게 예상하던 중국의 추격이 현실로 됐다. 단순 추격이 아니라 국가 첨단 기술 산업인 디스플레이 시장을 뒤흔들 정도로 파급력이 거세다.
문제는 지금도 한국 기업이 BOE를 비롯한 중국 패널사에 성장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기업이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 주거나 외부 경쟁사에 부품 공급을 제한하는 생존 전략 때문에 중국에 성장 빌미를 주고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사례를 살펴보자. LG 소재생산기술원(PRI)의 경우 본래 역할은 선행기술 연구개발과 생산 기술 최적화이지만 지금은 중소·중견 협력사의 최대 경쟁사가 된 지 오래다. PRI가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는 몇몇 장비는 외부 협력사가 진입하지 못하거나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는 '금기 영역'이다. LG디스플레이와 오래 손발을 맞춰 온 핵심 협력사도 성능 테스트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정작 PRI 장비가 여러 경쟁사 제품보다 성능이 좋은지에 대한 내·외부 평가는 차갑다.
삼성전자에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를 납품하며 매출 2조원대, 국내 1위 장비 기업으로 성장한 세메스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삼성전자와 일하며 기술력을 쌓았지만 해외 공급 실적은 없다. 세계 여러 소자 기업과 일하는 어플라이드,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등 글로벌 장비 기업 성적과 대조된다.
이 같은 국내 대기업의 계열사 키워 주기 전략은 개화를 앞둔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핵심 부품인 폴더블 디스플레이 개발 경험이 가장 앞섰지만 삼성전자의 무선 사업 경쟁력 때문에 화웨이나 샤오미 등에 우선 납품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폴더블폰 개발을 원하는 화웨이, 샤오미 등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대안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BOE가 최대 수혜 기업으로 떠올랐다. 삼성이 장악할 수 있는 시장을 경쟁국에 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첨단 기술 분야 대기업의 계열사 키워 주기, 일감 몰아주기는 그동안 일정 성과를 거뒀다. 소자 기업과 아주 긴밀하게 일할 수 있으니 핵심 기술 보안 유지 효과가 있었고, 매년 수천억원대 장비를 구매할 때 할인 효과도 누렸다. 삼성전자가 듀얼 엣지 디스플레이 같은 독보적인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호령한 것도 이 같은 폐쇄 전략 영향이 컸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 폐쇄형 사업 전략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다. 당장 계열사는 성장하겠지만 이에 밀려 기술력 있는 후방 강소기업은 설 자리가 좁아진다. 중국은 첨단 전방산업은 물론 후방산업까지 국산화를 노리고 있다. 대기업이 제 식구 감싸다가 산업 생태계 전체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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