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와 대구에서 전기차용 급속충전기 커넥터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충전인프라 발주처인 환경부와 한국전력공사가 전국 단위 대규모 리콜에 들어간다. 리콜에 앞서 비용 부담을 놓고 발주처(환경부·한전)와 충전기 제조사 간 신경전이 한창이다. 정부와 한전은 잘못된 부품을 사용한 제조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제조사는 발주 규격대로 제작해 문제될 게 없는 만큼 비용 전가는 부당하다며 맞서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 환경공단과 한전은 전국 공용시설에 구축한 급속충전기(50㎾급) 커넥터(충전기 손잡이 부분)와 충전케이블을 포함한 커플러 리콜을 결정했다. 리콜 규모는 전국 실외 공용시설에 설치된 급속충전기 커플러 1000여개다.
커플러는 충전케이블과 커넥터를 포함한다. 폭발은 커넥터에서 발생했지만 충전케이블과 일체형으로 제작돼 커플러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 커플러 비용은 대당 약 150만원으로,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전체 교체비용은 2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들 충전기 제조사는 대영채비, 중앙제어, 시그넷이브이 등 모두 중소기업이다.
환경부 환경공단 관계자는 “급속충전기 제품에 실외에서 적합하지 않은 커넥터를 사용함에 따라 리콜 조치를 조만간 실시한다”면서 “리콜 비용 조달 방식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는 비용을 중소 제조사에 전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충전기 업체 한 관계자는 “표준규격이 잘못된 것인데 발주처가 세부 사항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발주했기 때문”이라면서 “만일 리콜 부담을 제작사에 전담한다면 중소기업 입장에서 손해가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 발주서에 나온 표준규격대로 충전기를 생산해도 충전기 관리상의 문제를 고려하면 안전에 일부 허점이 발생할 수 있다. KS표준 규격에 따라 충전기 커넥터와 인렛(차량 충전구), 플러그 등은 커넥터와 인렛이 결합될 때 IP44(생활방수규격), 그 외 상태에서는 IP24 수준의 인증에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전국에 깔린 급속충전기 커넥터는 이 규격에 따른 성능에 미치지 못했다. 이 규격만 놓고 보면 제작사 과실로 볼 수 있지만 이 표준 규격에는 예외 조항이 포함됐다.
해당 규격에는 소켓-아웃렛, 커넥터 등이 일종의 보호 기구인 외함으로 조합해 제작했다면 IP24를 만족해도 된다고 명시했다. 결국 외함과 함께 제작됐다면 IP24 규격을 지키면 문제될 게 없다는 의미다.
국내 급속충전기 대부분은 독일 P사와 미국 R사 커넥터를 채택했다. 모두 설비 상단에 보호대를 포함해 커넥터를 거치할 수 있는 외함으로 조합됐다. 국가 표준에서 요구하는 방수 등급을 만족, 관련 인증을 모두 취득했다. 결국 안전인증까지 모두 취득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이에 정부와 충전기 업계는 정확한 과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의견이다.
한편 대구시와 대구환경공단이 최근 한국전기기술인협회를 통해 급속충전기 폭발 원인을 조사한 결과 커넥터가 장시간 빗물에 다량 노출돼 내부에 빗물이 유입되면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