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중앙처리장치(CPU) 공급 부족으로 공공기관 PC 조달 사업이 표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텔 CPU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원가를 못 맞춘 중소 PC업체가 입찰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4년 동안 유지해 온 중소기업 간 경쟁 방식을 처음으로 풀어 대기업·외국계 기업까지 참여시키는 일반경쟁 입찰로 전환했다. 인텔 CPU 공급난이 공공 PC 조달 체계까지 무너뜨린 셈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경찰청이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한 '2018년 사무용 PC 구매 사업'이 아직 사업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이달까지 세 차례 유찰됐다. 이후 8일에 뜬 네 번째 공고에서는 중소기업자간경쟁제품에서 일반경쟁으로 전환, 입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데스크톱 PC가 중소기업간경쟁제품으로 지정된 뒤 일반경쟁으로 전환된 것은 처음이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PC 공공조달 시장에는 중소기업만 참여했다.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일반경쟁으로 전환해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 HP·델 등 외국계 기업까지 참여할 수 있다.
PC 제조업체 관계자는 “중소기업간경쟁제품 지정 뒤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공공조달 시장 입찰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면서 “이번 입찰에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참여하거나 또다시 유찰된다면 사상 초유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에는 당초 중소 PC제조업체 3개 사가 컨소시엄을 맺고 참여하려 했다. 그러나 인텔 CPU 공급 부족으로 가격 부담이 커지자 입찰을 포기했다. 경찰청 사무용 PC 구매 사업은 연간 2만대 수준 데스크톱 PC를 다루는 공공 조달 시장 최대 규모 사업이다. 경찰청은 올해 사업에도 데스크톱 PC 1만7000대 규모에 153억원을 배정했다. 해당 사업 금액이 153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대당 90만원에 PC를 공급해야 한다. 투찰할 때 단가를 낮게 제안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공급 단가는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책정한다.
PC 제조업체 관계자는 “최근 인텔 CPU 도매가까지 오른 상황에서 해당 사업 가격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면서 “대형 사업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물량도 크고, 여차하면 손실도 볼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인텔 CPU 공급 부족 사태가 적어도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청처럼 차질을 빚는 공공입찰 사업이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다. 현재 공공 조달 시장에 등록된 데스크톱 PC 가운데 AMD CPU를 적용한 제품군을 가진 곳은 소기업 2개 사뿐이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텔 CPU 공급 물량이 부족해지면서 도매가도 올라 PC 제조업체가 느끼는 부담이 올랐다”면서 “인텔 CPU 수급이 당분간 빠듯한 데다 AMD CPU를 적용한 제조업체가 적어 제2, 3의 공공조달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