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신용카드 간 P2P 지불결제 시스템을 개발한 한 스타트업이 '카드깡' 업자로 주홍글씨가 새겨져 사업 시작도 못한 채 폐업 위기에 몰렸다.
정부 규제를 풀기 위해 3년여 간 서비스를 개선하고, 정부에 비조치의견서 등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유사 대형 카드사 서비스는 규제를 풀어줬지만 동일한 사업 모델을 보유한 스타트업은 아직 정확한 지침을 받지 못했다.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스타트업 팍스모네(대표 홍성남)의 P2P지불결제 기술이 금융당국 비조치의견서를 수개월째 받지 못한 채, 사업을 접을 위기에 처했다.
이 기술은 신용카드 간 P2P 지불결제 시스템이다. 통장 잔고 없이도 신용카드로 경조사비 등을 상대방 카드로 이체하고, 입금받은 사람은 카드 결제대금을 차감받는 신개념 P2P 결제시스템이다. 대형 카드사와 서비스를 준비 중이었지만, 금융당국이 카드 불법결제(카드깡) 소지가 있어 사업을 불허했다.
결국 팍스모네는 당초 사업 버전을 전면 수정했다. 이용대금 결제에만 P2P를 적용, 최종적으로 가맹점에서 재화와 용역 구매에만 사용되고, 송금·인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사업모델을 개선했다.
지난 9월 금융당국이 규제 개혁 일환으로 서비스를 허용한 '송금·인출 가능 선불카드'와 동일한 사업구조다.
금융위는 한발 더 나아가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시행령을 개정해 이 같은 규제 개혁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팍스모네는 1년여가 지난 지금도 금융당국의 비조치의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조치의견서 제도는 금융사 등이 특정 사업을 시행하기 전, 그 행위가 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묻는 제도다. 금융당국에 사전심사를 청구하면, 원칙적으로 30일 이내에 회신하며 회신 이후 10일 이내에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비조치의견서를 공개한다.
지난 9월 '선불전자지급수단의 신용카드 활용 가능 여부'에 대해 금융당국에 법령해석과 비조치의견서를 제출했다.
홍성남 대표는 “자사 서비스에 대한 법령 해석을 받기 위해 법령해석 요청을 금융위원회에 했지만 지금까지도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국무조정실에서 운영하는 규제개혁신문고에도 신산업에 대한 규제개혁 요청을 했지만, 아직까지 무소식”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제휴를 추진했던 대형 카드사와도 사업 자체를 포기했다.
금융당국 확인 결과, 팍스모네의 법령해석 질의에 대해 금융위가 '회신 지연 사유서'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팍스모네가 유권해석을 요청한건 9월 19일이다. 소관 부처는 중소금융과다. 하지만 10월에는 주무부처가 가계금융과로 이관됐고, 15일 뒤에는 또다시 중소금융과로 변경됐다.
금융위 내부에서 금융혁신 관련 업무가 수시로 바뀌면서 결국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했다. 국무조정실 규제개혁 신문고도 마찬가지다.
홍 대표는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여부만 알려주기를 희망한다”며 “대형 금융사 규제는 신속히 풀어주는 데 스타트업 사업에 대해서 수개월간 비조치의견서 하나 주지 않는 건 역차별”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측은 “관계 법령 등 면밀한 검토를 위해 부득이 회신기간을 연장했다”며 “검토가 마무리되는 데로 조속히 답변을 회신하겠다”고 밝혔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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