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인공지능(AI) 등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슈퍼컴퓨터' 역시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됐다. 슈퍼컴퓨터는 수 만에서 수 백만개의 중앙처리장치(CPU)를 고속 케이블로 연결해 아주 빠르게 작동하도록 만든 컴퓨터다. '아주 빠른 컴퓨터'는 왜 중요하고, 어디에 사용을 할까?
슈퍼컴퓨터 활용 대표 분야는 제품 설계다. 항공기, 자동차 같은 제품을 설계할 때 슈퍼컴퓨터로 모의실험을 하면 짧은 시간에 성능이 훨씬 뛰어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바이오·헬스 분야도 슈퍼컴퓨터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분야다. 1개의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수천개 이상의 후보물질 대상으로 여러 단계의 개발과 임상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모의실험을 통해 수 많은 후보군을 일일이 실험하지 않고도 안전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또 가설로만 존재하던 '힉스 입자'의 발견도 슈퍼컴퓨터가 있기에 가능했다. 유럽의 입자가속기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실험 데이터를 34개국의 슈퍼컴퓨터에서 분석·처리, 가설을 입증할 수 있었다.
최근 데이터경제 시대의 진입으로 슈퍼컴퓨터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컴퓨팅 자원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 '서밋'을 구축하고, 중국이 톱 500 가운데 206대로 가장 많은 슈퍼컴퓨터를 보유, 일본이 AI를 위한 'ABCI'를 구축하는 등 선진국이 앞 다퉈 성능 높은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는 12월부터 정식 서비스에 들어갈 슈퍼컴퓨터 5호기(누리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온 국민이 다 함께 누리는 슈퍼컴퓨터'란 의미의 누리온은 성능이 4호기보다 약 70배 향상됐다. 이는 빛이 1m 정도 나아갈 수 있는 찰나의 순간에 약 100만번 연산을 할 수 있는 엄청난 성능이다. 누리온은 암 전이, 우주 탄생 비밀 등의 거대 연구, AI 등 4차 산업혁명 경쟁력 확보, 산업체의 신제품 개발은 물론 기후변화나 전염병 예측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현안 해결에 활용할 예정이다.
슈퍼컴퓨터는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가 통합된 첨단 기술 집약체다. 또 슈퍼컴퓨터를 만드는데 필요한 요소 기술은 AI, 드론, 자율주행차 등에 적용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 기술에 해당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슈퍼컴퓨터에 필요한 핵심 기술과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2년 전부터 최초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단계별 기술 개발을 통해 산·학·연에 필요한 슈퍼컴퓨터를 안정 공급하는 것은 물론 산업 생태계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기반을 목표로 한다.
나아가 '포스트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를 준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초·원천 연구 활성화 방안'을 수립하고, 중·장기 관점에서 국내 ICT 기초〃원천 기술력을 강화해 나가기 위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중점 추진 분야로는 양자컴퓨팅, 지능형 반도체 등 차세대 컴퓨팅 혁신 기술을 연구하는 '미래 컴퓨팅'도 포함하는 등 우리나라가 기존의 추격자 지위를 넘어 세계 컴퓨팅 기술 생태계의 리더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5호기 활용과 미래 컴퓨팅 기술 개발로 국내 연구자와 산업계 경쟁력이 한 단계 향상되기를 기대한다.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jglee1098@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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