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빅데이터·혁신산업 M&A 시장 '지각변동'…업계 “혁신 촉진에 기여해야”

공정거래위원회가 빅데이터·혁신산업 관련 인수합병(M&A) 심사 기준을 처음 마련했다.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안을 행정예고하며 “한국 경제는 반도체, 정보기술(IT) 기기 등 혁신 기반 산업에 의존도가 높고 빅데이터 관련 산업이 급격히 성장 중”이라며 “그러나 혁신 기반 산업 M&A, 빅데이터 M&A의 경쟁저해 효과를 분석하기 위한 심사기준은 갖추지 못했다”고 개정 배경을 밝혔다.

'시대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조치라는 의미를 명확히 한 것이다. 혁신을 촉발하는 M&A는 장려하되, 무차별 M&A를 통한 공룡기업의 빅데이터·혁신산업 독과점 우려는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빅데이터·혁신산업 부문 M&A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업계 전문가는 규정 자체보다 향후 공정위의 '실제 운용 방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규제보단 혁신에 방점을 찍어 심사기준을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슈분석]빅데이터·혁신산업 M&A 시장 '지각변동'…업계 “혁신 촉진에 기여해야”

◇글로벌 ICT 기업 '무차별 M&A' 제동 걸린다

M&A 심사 때 빅데이터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세계적으로 빅데이터 기반 기업의 창업·성장이 최근 수 년 사이 급격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최난설헌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작년 말 발표한 '기업결합 심사에 있어서 빅데이터의 경쟁법적 의미' 논문에서 “근래 들어 빅데이터에 대한 경쟁법적 평가가 특히 기업결합 심사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다”며 “빅데이터가 기업결합 부문 외에서도 광범위한 경쟁 이슈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유럽연합(EU) 등 경쟁법 선진국에서도 관련 논의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은 상당히 선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M&A 시장에 미칠 파장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이유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M&A 전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빅데이터 확보를 목적으로 한 M&A는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ICT 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M&A 심사 때 빅데이터 독과점 여부는 '참고사항' 수준에 불과했다. 실제 공정위는 연간 600건 내외 기업결합을 심사하는데, 지금까지 빅데이터 독과점을 이유로 M&A를 불허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앞으로는 심사 때 빅데이터가 기업 사업에서 얼마나 비중이 있는지, M&A 주요 목적이 빅데이터와 관련이 있는지 판단해 시장을 별도 획정할 수 있다. 해당 M&A 목적이 빅데이터 확보며, M&A 성사 때 독과점 등 시장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자산매각 등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아예 금지할 수 있게 된다. 무차별 M&A로 빅데이터 시장을 독점, 경쟁 사업자 진입을 원천봉쇄할 우려가 해소될 전망이다.

혁신산업에 대한 별도 심사 기준을 마련한 것도 글로벌 ICT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ICT 기업이 연구개발(R&D) 단계의 특정 산업을 독과점 할 목적으로 M&A를 추진할 때 정부가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개정되는 기업결합 심사기준은 국내 기업에도 물론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글로벌 ICT 기업이 받는 영향이 더 클 것”이라며 “최근 수년간 사례를 봐도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의 M&A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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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분야 M&A 촉진해야…전문가들 “운용 방향이 중요”

이번 개정은 '혁신 M&A 촉진'이라는 정반대 효과도 기대된다. 빅데이터·혁신산업 관련 M&A 심사 기준이 명확해지면서 시장경쟁 저해를 초래하지 않는 M&A는 활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공정위가 해당 계획을 처음 밝힌 올해 업무계획 자료를 보면 '혁신경쟁 촉진' 파트에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 내용을 담았다. 처음부터 규제보단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다.

당시 공정위는 “신사업 분야를 대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빅데이터 보유 기업 간 수평결합, 빅데이터와 다른 상품 간 수직결합 등으로 야기되는 경쟁제한 효과에 대한 심사기준을 마련하는 등 신산업 분야 기업결합 시 발생할 수 있는 경쟁제한 유형을 심사기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으로 4차 산업혁명 분야 M&A가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성과 창출 여부는 공정위의 운용 역량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나지원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구체적 기준이 생겼기 때문에 M&A를 통한 혁신산업 진출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다만 빅데이터 시장의 지배적사업자는 M&A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준 자체보다는 실제 공정위가 어디에 방점을 두고 운용할지가 중요하다”며 “공정위 본연 역할대로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심사기준이 실제로 어떻게 활용될지가 중요하다”며 “기업은 기업대로, 공정위는 공정위대로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빅데이터와 기업결합 사안은 아직 학계에서도 정리된 영역이 아니다”며 “향후 부차적인 논의가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