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아현지사에서 발생한 화재가 유무선 통신망을 마비시키며 막대한 경제 손실을 초래하는 국가재난급 통신대란으로 비화됐다. KT는 안일한 네트워크 관리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KT 아현지사 화재 수습 못지 않게 화재 등 물리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망 관리'가 핵심 과제가 됐다.
당장 KT가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와 국가재난안전망 구축을 앞두고 물리적 비상사태에 대비한 망 분산·이중화 등 운영구조 개선, 비상 우회회선 등 물리적 안전대책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창규 KT 회장은 25일 “KT 아현지사 통신관로 화재로 인해 서대문, 용산, 마포, 중구 일대 유선전화, 인터넷, 이동전화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다”면서 “KT는 이른 시일 내 완전복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24일 오전 11시 12분부터 10시간가량 지속된 화재로 광케이블 220조(전선세트)를 포함해 16만8000회선이 영향을 받았다.
KT는 인원 600명, 이동기지국 45대, 모바일라우터 1000대를 동원하고, 통신국사 외부에 선로를 재설치하는 방식으로 긴급 복구에 나섰지만 복구까지는 일주일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개인 이용자는 물론 소상공인, 기업, 관공서까지 통신이 전면 마비되며 경제 피해 규모가 상당할 전망이다.
KT는 물론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통신대란을 키웠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1994년 동대문지하상가 화재로 수도권 일대 유선전화와 무선호출기, 팩스, 금융거래가 마비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효과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KT 아현지사는 백업 및 이중화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KT 아현지사는 정부 재난관리매뉴얼상 D등급으로 관리돼 백업체계를 통신사 자율에 맡기는 구조였다. 국가비상통신망 등 주요시설 백업체계를 정부가 점검하는 ABC 등급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피해는 국가 주요시설 파괴만큼이나 컸다.
화재가 발생한 지하 통신구에는 소화기만 설치됐을 뿐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현행 소방법은 전력이나 통신사업용 지하구가 500m 이상인 경우에만 스프링클러 등 연소방지설비와 자동화재탐지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 설치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전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KT 아현지사는 네트워크부문과 커스터머부문 등이 순회하면서 관리하는 형태로 평소 10여명 내외 관리자, 주말 2명 관리자가 근무하는 '무인국사' 형태다.
이같은 체계로는 5G와 국가재난안전망 등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새로운 통신망 구축과정에서도 물리적 위험에 따른 통신망 장애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통신 전문가는 “KT 통신장애를 계기로 긴급 상황에 대한 총체적 점검 및 훈련이 필요하다”면서 “유선 우회망 확대는 물론 긴급 사태에 대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투입할 수 있는 무선 기지국과 중계기 등 백업 장비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신망 관리 리스크 전반을 바로잡을 교훈으로 삼되 과도한 규제 강화보다 통신사 백업체계 확보를 위한 투자 여력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의 경우 통신경로와 컴퓨팅파워 자체를 엄격히 이중화하는 것과 달리 통신회선 이중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건 통신사 투자여력 저하 때문”이라면서 “과도한 규제강화 보다는 통신사 투자 여력을 확대해 이중망 투자를 유도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KT는 서울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인해 통신장애 피해를 본 고객에게 1개월치 요금을 감면해준다고 밝혔다.
KT는 감면 대상 고객을 추후 확정해 개별 고지할 예정이다. 무선 고객의 경우 피해 대상지역 거주 고객을 중심으로 보상할 방침이다. KT 관계자는 “소상공인에 대한 피해 보상은 별도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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