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변화와 혁신' 강조한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28일 전격 발표한 퇴임 선언에는 그룹의 변화와 혁신을 촉구하는 절박한 심정이 담겼다.

이 회장은 이날 임직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경영환경이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10년 전이나 5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매년 시무식 때마다 환골탈태 각오를 다졌으나 미래의 승자가 될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중장기 전략은 실체가 희미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코오롱호 운전대를 잡고 앞장서 달려왔지만 이제 그 한계를 느낀다”면서 “불현 듯 내가 바로 걸림돌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고, 내가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겠구나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걸림돌'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것이다.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 회장의 아들 이동찬 명예회장의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난 이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경영 승계를 준비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한 뒤 12년 만인 1985년 임원으로 승진했고, 1991년 부회장에 오른 뒤 1996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3세 경영'을 시작했다.

코오롱그룹을 23년간 이끌어온 이웅열 회장은 “1996년 1월, 40세에 회장직을 맡았을 때 20년만 코오롱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는데 3년의 시간이 더 지났다”면서 '시불가실(時不可失·한번 지난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한 뒤 “지금이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 타워에서 열린 임직원 행사에서 예고 없이 연단에 올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전격 선언했다. 청바지에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캐주얼한 복장으로 나섰다. 코오롱그룹에 따르면 별도 퇴임식도 갖지 않는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28일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열린 사내 행사에서 자신의 퇴임을 밝혔다.(제공: 코오롱그룹)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28일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열린 사내 행사에서 자신의 퇴임을 밝혔다.(제공: 코오롱그룹)

이 회장은 끝까지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제가 떠날 때를 놓치고 싶지 않듯이 여러분들도 지금이 변화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며 “지금 이 순간 변화의 모멘텀을 살리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코오롱그룹은 이 회장의 퇴임에 따라 주요 계열사 사장단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성격의 '원앤온리(One & Only)위원회'를 두고 그룹의 주요 경영 현안을 조율하기로 했다.

2019년도 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코오롱의 유석진 대표이사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켜 지주회사를 이끌도록 했고, 유 사장이 신설되는 '원앤온리위원회' 위원장도 겸임한다.

4세 경영 시대도 본격 준비한다. 이웅열 회장의 아들 이규호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가 전무로 승진해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됐다. 이 전무는 그룹 패션사업 부문을 총괄 운영한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이 전무에게 바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는 대신 그룹 핵심 사업 부문을 총괄 운영하도록 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라며 “그룹을 이끌 때까지 경영 경험과 능력을 충실하게 쌓아가는 과정을 중시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임직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웅열 회장. 이 회장은 임직원들을 보며 아쉬운 듯 잠시 눈물도 보였다고 그룹은 전했다.(제공: 코오롱그룹)
임직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웅열 회장. 이 회장은 임직원들을 보며 아쉬운 듯 잠시 눈물도 보였다고 그룹은 전했다.(제공: 코오롱그룹)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