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미 동맹과 데이터 이동 자유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버 현지화 조치를 피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국회와 정부가 추진하는 인터넷 역차별 해소 정책이 미국 인터넷 기업에 피해가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미국 주장이 법률(안)을 오해한 측면이 강해 '자국 기업을 위한 통상압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퍼시핀더 딜런 주한미대사관 경제과 공사참사관은 28일 “데이터 현지화 조치를 피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딜런 참사관은 이날 고려대에서 열린 '국경없는 인터넷 시대 주권 지키기' 토론회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 개회사를 대독하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 정부가 한국에서 추진하는 인터넷 역차별 해소 정책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딜런 참사관은 “올해는 한미동맹 65주년으로 양국 관계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사이버 스페이스까지 연장된다”면서 “상품과 서비스,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게 글로벌 경제 동맥”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디어와 서비스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시키면 많은 기회가 생기며 이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 인도·아시아 정책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주한미대사관이 서버 현지화 조치 철회를 언급한 것은 한국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인터넷 역차별 해소 정책이 경제 이익을 해친다는 구글, 페이스북 등 자국 글로벌 인터넷 기업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국회에는 서버 설치 의무화, 인터넷 광고 과세, 품질 유지 의무화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을 겨냥한 역차별 해소 법률안이 다수 제출됐다.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 현실화할 단계에 이르자 미국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주한미대사관과 토론회 참석자가 '서버 현지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법안 취지를 오해한 것을 넘어 부정적 프레임을 뒤집어씌운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변재일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법률(안)은 대규모 해외 인터넷 기업이 국내에 서버를 의무 설치하도록 했다.
이는 국내 이용자를 보호하고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캐시서버를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것일 뿐 데이터 현지화나 개인정보 현지화와 관련이 없다. 자주 사용하는 정보를 국내 서버에 사전 저장, 이용자가 요구할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정보는 저장할 의무가 전혀 없다. 더욱이 이러한 서버 요구는 한미 FTA '현지 주재 의무 부과 금지'와도 무관하다. 서버는 '현지 주재'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론회를 주최한 시민단체가 과거 구글로부터 투자를 받은 전력이 있는 데다 토론회 참석자 모두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 입장을 반복, 토론회가 편파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변재일 의원실 관계자는 “대용량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해외 인터넷 기업이 국내에서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자는 것”이라면서 “데이터를 국내에 가두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