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업계가 '암호화폐 거래소 표준약관' 제정을 추진했지만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암호화폐 관련 기본 법률이 없는 상황에서 표준약관부터 만들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암호화폐 법제화 논의가 공회전 하고 있어 약관 관련 소비자 혼란·분쟁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업계 자율 규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블록체인협회는 법무법인 김앤장과 함께 올해 중순 암호화폐 거래소 표준약관을 개발했지만 반년 째 공정거래위원회 제정 절차를 밟지 못했다.
사업자나 사업자단체가 표준약관을 개발해 공정위에 심사를 청구하면 의견 수렴, 약관심사자문위원회, 소회의 등을 거쳐 제정을 확정한다. 그러나 암호화폐 거래소 표준약관은 심사 청구 전 단계부터 제동이 걸렸다. 공정위가 부정적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암호화폐 관련 기본 법률이 없는 상황에서 표준약관부터 제정하는 것은 '선후 관계'가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 표준약관은 정식 심사 청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면서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정책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표준약관부터 제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제대로 된 법률이 만들어지면 표준약관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협회는 표준약관 제정 작업을 잠정 보류했다. 반면 시장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와 이용 고객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표준약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정부 상황을 봐가면서 작업을 지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표준약관 부재에 따른 시장 혼란을 우려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제각각 상이한 약관을 운용하고 있어 소비자 혼란·분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 4월 '부당한 입출금 제한 조항' 등 총 12개 암호화폐 거래소의 14개 유형 불공정 약관을 적발한 바 있다.
암호화폐 법제화 논의가 지지부진해 유관 시장에서는 마냥 기다려야 하느냐는 여론이 형성됐다.
무소속 정태옥 의원(가상화폐업에 관한 특별법안),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암호통화 거래에 관한 법률안) 등이 암호화폐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논의는 별다른 진척이 없다.
전문가들은 업계가 자율 규제 형태로 공정한 약관을 운용하고 향후 법제화 등이 마무리 되면 표준약관 제정을 추진하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암호화폐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공정위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협회가 중심이 돼 업계가 자율 규제를 적용하도록 하고 시장 신뢰를 쌓은 후 표준약관 제정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