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얼마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 미팅에서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산업 발전 방향을 발제하며 필자의 절박한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25년 동안 AI와 빅데이터 산업에 몸담아 왔지만 요즘처럼 이 분야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큰 시기는 없었다. 많은 사람이 경제 성장 원동력으로 데이터와 AI를 얘기하지만 흐르는 시간은 혁신 성장 기반이 취약한 우리 편이 아닌 듯하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하반기 기준 임직원 100명 이상 국내 기업·기관 빅데이터 기술 도입률은 7.5%에 불과하다. AI나 데이터 활용 수준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매우 열세인 태동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
데이터 경제 실현과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데이터 과학자 같은 핵심 인재 양성과 함께 기술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을 위한 '혁신 성장 공유 인프라'가 필수다. 정부는 이를 인식하고 중소기업 데이터 활용 지원을 위한 세부 전략을 제시했다. 8월 31일 문재인 대통령은 “데이터는 미래 원유”라며 2019년까지 1조원을 투입해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데이터를 구매·가공할 수 있는 데이터 바우처 제도, 데이터 플랫폼과 분야별 센터 100곳 구축에 8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도 눈에 들어온다. 자세한 추진 전략에 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데이터 기반 산업 혁신을 중소기업에까지 확대해서 지원하겠다는 방향은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정부 노력이 실질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유 인프라보다 진화된 클라우드 플랫폼 확보를 핵심 성공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 AI 시스템 구축비용 70% 이상이 데이터 수집·저장·정제와 반복된 데이터 학습에 소모된다. 이 모든 작업은 단일 서버가 아닌 클라우드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특히 딥러닝을 포함한 대규모 기계학습과 미래 기술로 급부상하고 있는 AutoML은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라우드 없이는 경제성 확보뿐만 아니라 시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문제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해외 글로벌 기업이 국내 스타트업과 기술 중소기업을 위한 빅데이터 활용 및 AI 인프라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면 국내 데이터 산업 해외 의존도와 중독성은 절대가 된다. 이를 조금 과장하면 19세기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 경제와 국가 위상이 뿌리째 흔들린 역사 속 교훈을 떠오르게 한다.
규모 경제와 기술 생태계 관점에서 국내 클라우드 사업자가 경쟁력이 있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핵심 인프라 보유 없이 응용 서비스만으로는 신산업 성장 지속 가능성 확보는 불가능하다. 데이터·AI 산업에 투자된 막대한 국내 자산을 고스란히 해외 거대 경쟁 기업 가치 향상에 기여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민·관 협력을 통한 저비용 고효용 데이터 수집·저장·분석·유통·지능화가 가능한 공유 클라우드 체계 확보는 절실하다. 점점 중요성이 커지는 이종 산업 간 데이터 융합과 지능화를 위해서도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필연이다. 데이터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원유라면 미래의 클라우드는 그 원유를 잘 정제·가공할 수 있는 최고 정유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 안에 소프트웨어(SW) 패키지와 라이선스 시장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컨설팅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진화된 클라우드 서비스 체계는 미래 AI 산업과 데이터 경제 활성화만이 아니라 국내 SW 솔루션과 IT 서비스 기업 생존과도 관련이 있다. 국내 기술 기업은 좋은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어도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을 제외하면 서비스를 판매할 수요처가 마땅치 않아 성장이 더딘 상황이다. 아마존과 구글이 그러하듯 이러한 기업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해 준다면 국내에서도 진정한 플랫폼 생태계와 세계 수준 데이터 및 AI 기업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정부는 중소기업 중심 데이터 경제 활성화 의지를 천명했다. 이제는 그 의지를 성과로 실현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필자는 그 답이 공유 클라우드 인프라와 그 위에서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어 갈 국내 유수의 중소 SW와 IT 서비스 기업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진정한 성과 창출을 위한 전략 차원의 결단과 실행이 필요한 때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이사 tony@saltlu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