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업권이 추진하던 블록체인 플랫폼 사업이 결국 무산됐다. 대형 생보사가 컨소시엄 합류를 고사한 데다 설익은 사업계획으로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시류에 무리하게 편승하려다가 빚어진 예견된 일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연말께 구축을 목표로 했던 '생명보험업권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 및 블록체인 기반 혁신과제 구현 사업'이 무산됐다. 최근 생보협회는 사업자로 선정된 삼성SDS 측에 우선사업자 선정 취소를 통보하고, 사업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삼성SDS 측에 우선사업자 선정 취소 통보를 전하면서 기존 사업계획은 무산됐다”며 “다만 컨소시엄은 유지할 것이며 내년에 사업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생보협회와 19개 생보사는 올해 4월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5월 20일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 사업자로 삼성SDS를 선정했다. 생보업권 블록체인 플랫폼을 구축해 본인인증과 보험금 간편 청구 등에 활용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내외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형 생보사인 삼성생명이 컨소시엄 합류를 고사했고 사업 첫 단계인 본인인증 관련 인증서 발급을 놓고 협회와 업계 대립이 지속됐다. 업계는 공동인증서비스 제공을 위한 CA(인증)시스템을 협회가 총괄해 단독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공동구축은 개별회사 업무 부담이 늘고 향후 공동 인프라 구축, 유지보수 비용 등이 부담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협회는 책정한 예산이 공동구축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강하게 밀어 붙였다. 여의치 않자 '단독구축 후 공동구축으로 선회'라는 제안을 내놨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은행권 블록체인 공동인증 '뱅크사인' 흥행 실패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 공인인증서 대비 호환성이 떨어진데다가 안정성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유일한 사업계획이던 간편 청구만으로 전체 사업을 끌어가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이미 교보생명이 정부주관 블록체인 시범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블록체인 기반 간편 보험료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향후 업계 전반에 확대 적용할 예정이었다. 별도 비용을 들여 간편 청구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떨어졌던 이유다.
생보사 관계자는 “뱅크사인 흥행실패를 보고 은행보다 공인인증 빈도가 낮은 보험업권이 무리하게 블록체인 기반 본인인증에 나설 필요가 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며 “간편 청구 역시 교보생명이 이미 구축한 플랫폼이 있어 사업성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시류에 편승한 설익은 사업계획이 재검토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핵심 사업을 담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외부 시선만 의식했다는 것이다.
올해 초에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을 주요사업으로 천명했던 첫 민간출신 신용길 협회장의 리더십에도 상처를 입게 됐다.
협상 잠정 중단·사업 재검토 공문을 받은 삼성SDS도 난처하게 됐다. 6개월간 자문을 하고 인력을 지원했지만, 비용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향후 사업 재추진 등을 고려해 소송까지 번지지는 않겠지만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SDS 측은 “이미 인증·보험금 자동청구 관련 업계 요구를 모두 충족시킨 상황”이라며 “앞으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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