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빅데이터 독점'이 발생하는 인수합병(M&A)을 불허하는 규정을 만드는 것과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반대 의견을 냈다. 빅데이터 산업이 싹을 틔우기 전부터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다. 공정위는 혁신 촉진 규정이라고 반박했다.
업계 의견도 크게 갈렸다. 특성상 데이터 수집·융합이 대량으로 필요한 빅데이터 산업을 원천 규제하는 꼴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차별 없이 데이터를 공유하는 '데이터 민주화' 차원에서 적절한 조치라는 목소리가 맞선다. 공정위가 실제 규정을 운용하기 전에 업계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당초 취지와 달리 기업 혁신을 저해하는 '탁상행정'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분은 공동 목소리다.
9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가 행정예고 한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안'(이하 개정안)을 놓고 과기정통부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공정위는 기업 간 M&A 때 빅데이터 독점이 생기면 결합을 불허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안을 지난달 행정예고 했다. 빅데이터를 하나의 상품으로 판단, M&A로 관련 시장에서 경쟁 제한이 발생하면 시정 조치를 내리거나 M&A 자체를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위는 행정예고 기간(11월 16~26일)에 유관 부처, 업계로부터 찬반 의견을 수렴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과기정통부가 반대 입장에 섰다.
과기정통부는 빅데이터 정의가 여전히 모호하고, 독점이 문제되는 M&A 사례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내 빅데이터 산업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규제부터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아직은 이런 규제가 이르다는 입장”이라면서 “어느 정도 산업이 성숙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때 규제책을 만드는 게 맞다고 본다”고 피력했다.
반대로 공정위는 규제가 아닌 혁신에 초점을 맞춘 개정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기업결합 심사 때 빅데이터 독점 여부를 고려하고 있으며, 이번 개정으로 모호한 규정을 정비함으로써 오히려 관련 M&A가 촉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규제 정책을 총괄하는) 총리실과도 협의해 이미 이번 개정안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업계 의견도 크게 갈렸다.
국내 한 데이터 컨설팅 기업 관계자는 “공정위의 빅데이터 공부가 부족한 것 같다”면서 “데이터가 매시업(mashup) 된 이후에야 빅데이터 의미가 있는 것인데 연결 과정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한 소프트웨어(SW) 기업 대표는 “데이터는 기존 기업이 많이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기업결합 기준 개정으로) 특정 기업이 빅데이터를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데이터 민주화 차원에서 적절한 조치”라고 맞받아쳤다.
입장 차는 뚜렷하지만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 운영'에는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의 무차별 M&A를 막되 그렇지 않은 M&A는 촉진하겠다는 게 공정위 의도로 보인다”면서 “실제 규정을 적용할 때 이런 취지에 어긋나지 않도록 현장 목소리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