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톱박스용 시스템온칩(SoC) 제조사 브로드컴이 우월 지위를 남용, 국내 유료방송 사업자와 셋톱박스 제조사를 압박하고 있다.
셋톱박스 핵심 부품 점유율이 최고 90%에 이른다는 점을 악용해 경쟁사 부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가 하면 기존 셋톱박스 유지보수 비용으로 수십억원을 청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료방송 사업자와 셋톱박스 제조사는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려는 브로드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시급하다고 요구했다.
브로드컴은 이 같은 요구를 문서가 아닌 철저하게 구두로 전달하고 있다. 근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다.
10일 유료방송 사업자에 따르면 종전 리눅스 운용체계(OS) 셋톱박스에 이어 안드로이드OS 셋톱박스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잇따르자 브로드컴이 부품 공급 중단은 물론 기존 셋톱박스 유지보수 비용 청구 등 압력을 가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리눅스OS 기반 셋톱박스 칩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A사는 안드로이드OS 셋톱박스를 도입하기 위해 제조사에 제안요청서(RFP)를 발주했다. 그러나 브로드컴 부품을 사용하지 않는 제조사를 최종 선정했다는 이유로 브로드컴으로부터 연간 40억~50억원 수준 유지보수 비용을 청구 받았다.
브로드컴이 유지보수 비용을 요구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안드로이드OS 도입 계획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B사 역시 안드로이드OS 셋톱박스 도입을 추진했다. 최종 선정된 제조사가 안드로이드OS칩 공급사를 당초 계획과 달리 브로드컴으로 변경, 셋톱박스 가격이 비싸졌다. 제조사 역시 브로드컴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브로드컴은 안드로이드OS 셋톱박스 칩도 제작한다. 그러나 브로드컴 칩을 탑재하는 셋톱박스는 경쟁 제품보다 최고 약 50달러 비싼 것으로 전해졌다.
브로드컴은 셋톱박스 제조사에도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 브로드컴 칩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공급하지 않겠다며 자사 칩 사용을 강요하고 있다.
유료방송 관계자는 “브로드컴은 각종 행위로 고객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결국 피해는 소비자로 이어지는 만큼 공정위 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자칫 유료방송 사업자와 셋톱박스 제조사는 비용 부담이 늘고 궁극적으로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에 앞서 브로드컴은 유럽에서도 이 같은 행위를 자행, 유럽연합(EU)으로부터 반독점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EU는 브로드컴이 우월한 시장 지위를 이용해 고객에 자사 칩 사용을 강요했다고 보고 가격을 올리는 행위 등이 있었는지 증거를 찾고 있다.
브로드컴은 이와 관련, “내부 논의 후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박진형기자 jin@etnews.com,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