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계가 이룬 중요 성과 가운데 '인터넷 역차별 해소'를 빼놓을 수 없다. 동일 규제가 국내 기업에 적용되는 반면 해외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산업과 이용자 모두 피해를 봤다.
그동안 '집행력 부재'를 이유로 역차별 해소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면 이제는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도 확인했다. 이런 자신감이야말로 값진 것이다.
산업계와 정부, 국회가 힘을 합쳐 얻어낸 결과다. 우선 강도가 세지 않은 법률부터 도입됐다. 해외사업자라 해도 국내에 영향을 미치면 국내 법률을 적용한다는 '역외 적용'이 국회 문턱을 넘어 6월에 시행되고, 국내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3월 시행을 앞뒀다. 부가통신사업자 실태 조사 근거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통과로 2021년부터 해외 인터넷 기업 실태 파악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이용자 피해가 심하면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임시중지제도'가 국회에 묶여 있고, 허가·신고 주체와 사업 주체 불일치 문제 해소는 논의를 시작한 단계다. 부가통신사업자 통계 보고 의무화도 과제다. 국제공조체계 구축, 인터넷 사후규제 개편 등은 길게 봐야 한다.
망 이용 대가 가이드라인을 바라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가이드라인 제정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 연초에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통신사는 협상 카드가 하나 생기는 셈이다. 해외 인터넷 기업과의 협상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은 평평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음이 복잡한 이유는 냉정히 따졌을 때 가이드라인은 '가이드라인'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법에 준하는 강제력이 없다.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예시를 보면 성실 협상과 사전고지 의무를 '선언'하는 수준이다. 망 이용 대가 산정 원칙도 마찬가지다. 해외 인터넷 기업이 거부하면 대응 방법이 마땅치 않다. 통신사가 걱정하는 점이 이 부분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협상을 압박하면 최악의 경우 해외 사업자는 사업을 철수할 수 있다. 그에 따른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면 모든 비난이 통신사로 쏟아질지 모른다. 가이드라인 제정 시 이런 점까지 고려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5세대(5G) 이동통신 관련 망 중립성에서 어떠한 합의도 도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5G 서비스가 나오면 실측 자료를 토대로 재논의하자는 게 성과라면 성과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우선 망 중립성 규제 파급력이 커서 섣불리 건들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수천 만 국민과 기업이 이용하는 인터넷 망의 근본 규칙이다.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인터넷 기업이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망 중립성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또다른 이유는 '불신' 탓이다. 지난 수년 동안 망 중립성 논의가 나올 때마다 '통신사가 망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음모론에 가까운 반대 논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정부와 통신사가 망 관리 내역을 아무리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해도 이견은 좁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불신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이상 망 중립성 논의는 진척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곧 5G 서비스가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기술 특성상 기업형(B2B) 서비스가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게 가능하려면 '급행 차로'를 제도로 보장해 줘야 한다. 기술로는 가능하지만 뒤를 받쳐 줄 제도가 없다. 통신사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5G 서비스를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