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은 지난 100여년간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주도해왔다. 제조업 특성상 내연기관 성능, 안전성, 디자인 등 주로 하드웨어(HW) 부분이 중요한 기준이 됐다. 하지만 최근 4차 산업혁명의 등장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소프트웨어(SW)도 중요해졌다. 특히 올해는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공유서비스 등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서비스로서 이동성(MaaS·Mobility as a Service)' 시장이 본격 형성될 전망이다.
MaaS 또는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는 자동차를 이용한 모든 서비스를 포함한다. 비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서비스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예전부터 존재했던 택시, 대리운전은 물론, 카셰어링(차량공유), 라이드셰어링(승차공유) 등이 모두 MaaS에 속한다. 최근 택시업계와 카카오모빌리티 간 갈등을 빚었던 '카풀' 역시 대표적 MaaS 사업이다.
모빌리티 전문가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서비스에 대해 'MaaS 1.0'으로 분류했다. MaaS 1.0은 사람이 이동수단을 연결만 해준다. 대표 서비스가 '우버(Uber)'다. 우버는 사용자가 애플리케이션(앱)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수많은 기사들에게 알려주고 연결시켜준다. 국내 '콜택시'와 비슷한 형태지만 택시가 아닌 일반 차량 및 운전자라는 점이 다르다.
MaaS 1.0에서 측위, 경로, 요금계산 등 복잡한 알고리즘이 합쳐진 것이 MaaS 1.5다. 대표 서비스로는 카풀, 우버풀 등이 있다.
MaaS 2.0은 승차공유 서비스와 자율주행, 커넥티드 기술이 융합된다. 사용자가 앱에서 목적지를 입력하고 배정되는 차량을 타고 이동한다는 점은 MaaS 1.0과 동일하다. 하지만 운전 주체가 사람이 아닌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운전석에는 기사가 탑승하지만 운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점검하고 비상 상황에만 대비한다.
MaaS 2.0은 지난해 CES 2018에서 미국 승차공유업체 리프트(Lyft)가 자율주행 솔루션 업체 앱티브(Aptiv)와 함께 '자율주행 택시'를 시범 서비스하면서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웨이모(Waymo)는 지난해 12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 '웨이모원'을 개시해 MaaS 2.0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제너럴모터스(GM),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올해 미국에서 자율주행 승차공유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MaaS 3.0은 운전사조차 필요 없는 완전자율주행 '로보택시' 단계다. 사람이 필요 없기 때문에 24시간 서비스가 가능하고, 비즈니스 형태도 단순 이동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무실, 호텔 등 확장성이 무한하다. 또 자동차 뿐만 아니라 드론, 소형 비행기 등 이동수단도 다양해질 수 있다. 실제 우버, 에어버스, 보잉, 벨 등은 '에어택시' 선행기술 개발에 착수했고 2020년대 중반 시범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미국 신기술 부문 연구소인 '리싱크엑스(ReThinkX)'는 MaaS 확산으로 차량 수요가 격감해 2030년까지 완성차 업체 수익이 80% 가량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2030년 미국 시민 95%가 주문에 따라 호출되는(on demand) 자율주행 전기차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위스투자은행(UBS) 역시 2035년이 되면 80%가 로봇택시를 이용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계에서는 MaaS가 사용자 접근성이 주요 소구점인 만큼 '플랫폼' 주도권을 핵심으로 보고 있다. 실제 MaaS 시장에서는 전통 자동차 업체보다 우버, 리프트, 그랩(Grab) 등 정보통신(IT) 기업이 아직까지 우위를 점하고 있다. 확고한 플랫폼과 서비스, 수많은 이용자가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선두주자인 웨이모조차 자율주행 택시 플랫폼으로 우버와 리프트를 선정한 것은 사용 편의성이 MaaS에서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MaaS 시대에는 플랫폼 주도권은 기업의 가치 평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우버 기업가치는 최대 1200억달러(약 135조원)로 평가받았다. IT기업 부문으로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GM-포드-FCA '빅3'를 합친 것보다 많다. 현대차 기업가치는 198억달러(약 22조원)로 우버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위기에 몰린 완성차 업체는 MaaS 시대 생존을 위해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고 있다. 지난해 다임러와 BMW는 모빌리티 서비스사업을 통합한 회사를 각각 50%씩 출자해 독일 베를린에 MaaS 사업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벤츠 '카투고' BMW '드라이브 나우' 플랫폼을 하나로 합치고 택시, 주차, 전기차 충전 등 다양한 서비스 협업을 진행한다.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 간 '합종연횡'도 이뤄지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은 인텔 산하의 '모빌아이(Mobileye)' 챔피언모터스와 제휴해 이스라엘에서 전기 자율주행 차량을 통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시작한다. 토요타는 MaaS 혁신을 위해 소프트뱅크와 '모넷테크놀로지'를 공동 설립했다. 또 우버(5억달러), 그랩(10억달러) 등에 천문학적 액수를 투자하며 협력관계를 맺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MaaS 관련 투자만 약 5000억원가량 집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