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공지능(AI) 성패는 현장에 적용하는 시스템에 달렸습니다. 규제 개선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뛰어난 기술도 사장될 우려가 있습니다.”
서준범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장(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은 우리나라 의료AI 기술과 인력은 일정 수준에 도달했지만, 현장에 적용하는 국가·사회적 시스템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 AI가 의료 서비스 개선과 산업적 효과에 긍정적인 기대가 높다. 하지만 각종 규제와 이해관계 등으로 현장 적용은 더디다.
서 회장은 “AI 핵심은 인력과 데이터인데 우리나라는 뛰어난 공학도와 의료진 그리고 상대적으로 양질 데이터를 보유한다”면서 “결국 개발한 결과물을 병원 등 현장에 적용해야 하는데 법적 제약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의료AI 적용이 어려운 것은 수가 등 비용 문제와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 규제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의료영상 기반 AI 판독지원 솔루션이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았다. 병원은 도입을 주저한다. 도입에 따른 수가가 마련되지 않아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수가가 마련된다고 해도 논의하는데만 1년 가까이 걸린다.
서 회장은 “우리나라는 단일보험 체제로 국가기관이 혁신기술을 평가하고 수가를 책정해 현장에 들어간다”면서 “이런 논의가 1년 가까이 걸려 혁신 기술을 조기에 적용하는 게 어렵고, 수가 역시 기존 예산에서 할애하는 것이라 수가가 깎이는 영역에서 심리적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발 혹은 상용화 과정에 강력한 개인정보보호 규정도 혁신을 주저하게 만든다. AI 핵심은 양질의 데이터다. 기술 특성상 많은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신뢰도가 높아진다. 국내에서 기업이 개인정보, 특히나 민감성이 가장 높은 의료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어렵다. 개인동의와 비식별화 등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과정으로 수만명의 데이터를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서 회장은 “일반적으로 엑스레이 영상을 활용한 판독지원 솔루션을 개발하려면 10만장에 가까운 영상정보가 필요한데, 현재 법규로는 10만명 모두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서 “미국을 비롯해 최근 무섭게 떠오른 중국마저도 개인정보 규제를 개선해 개발을 지원하고, 조기 현장 적용으로 성능을 향상한다”고 말했다.
AI 기술은 빠르게 진화한다. 매일 쏟아지는 데이터를 학습해 성능을 향상하고, 고도화된 알고리즘은 영역 확장을 지원한다. 결국 현장에 조기 적용해 성능향상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최근 AI나 로봇, 3D프린팅 등 혁신 의료기술 조기 현장적용을 위해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의료AI 등 혁신 의료기술은 기존 의료기술평가 방식이 아닌 별도 트랙평가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서 회장은 “정부는 연구개발(R&D) 지원도 중요하지만 개발 후 의료현장에 투입하고, 경제·사회적 효능을 지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시판 후 임상시험 등 혁신의료기술을 조기에 적용하는 R&D 기금을 마련하되 안전성을 모니터링해 환자 피해를 막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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