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빅데이터,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빠르게 성장, 전지의 중요성이 커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배터리 기술이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시장 주도권 경쟁도 자동차가 아니라 배터리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산업연구원(KIET)이 향후 5~10년 이내 리튬이온전지가 성능의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포스트 리튬이온전지 자리는 어떤 전지가 차지할까? 최근 한창 개발 중인 차세대 전지 간 주도권 경쟁이 흥미롭다.
지금까지는 원자력전지와 수소연료전지가 경합을 벌이는 양상이다. 여기에 전고체전지가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했다. 기존 리튬전지도 주인공 자리를 지키기 위해 리튬황전지와 리튬금속전지 등으로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원자력전지와 수소연료전지 및 전고체전지 등 차세대 전지 개발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을까? 각각 기술 현주소와 적용 분야를 살펴본다.
원자력전지(베타전지)는 미소전력 사용구간에서 높은 전력밀도를 갖는 분야에 장수명 전지로 사용할 수 있다. 의료, 국방, 항공우주, 해양, 원전, 로봇 등 특수분야에 주로 사용한다. 전지를 충·방전할 수 없는 극한지역에 설치하는 장치가 적용 대상이다. 국방 분야라면 미사일 대기 전력과 군사 작전용 센서, 의료분야는 맥박조정기, 제세동기 등에 적용한다. 그외 우주선 내 각종 센서, 위성 전력원으로 활용 가능하다.
리튬이온전지와 수소연료전지는 자동차에 가장 폭넓게 활용된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지의 주요 자동차 메이커가 최근 친환경 자동차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당분간 리튬이온전지 수요가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수소연료전지는 복잡한 발전장치를 단순화하고 비용절감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면 자동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리튬이온전지는 성능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보완을 지속해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PC 등 소형 IT기기 시장에서 강세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고체전지는 리튬이온전지 대체는 물론 화재진압 로봇이나 사막 등 리튬이온전지를 적용하기 힘든 열악한 고온 환경에서도 특수 목적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그리드 보급과 전력부족 해결을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일단 내년 이후에는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리튬이온전지, 전고체전지, 공기전지가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 전지 = 국내에서는 '베타전지'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도 원천기술을 확보한 단계다. 리튬전지와 수소연료전지와 비교하면 아직 초기단계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베타전지를 가장 주목하고 있다.
베타전지는 화학반응을 수반하는 다른 전지와 달리 물리 에너지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물리전지다.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방출하는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해 전지로 이용한다. 충전을 하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는 국방, 항공·우주, 해양, 의료 등 특수산업분야에 일부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와이드트로닉스, 시티랩 등이 미국방성(DOD)과 록히드마틴 투자를 받아 개발하는 중이다. 주로 Ni-63(니켈-63)과 트리튬(삼중수소)이라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한다.
러시아 국영 연료회사 TVEL은 지난 1월 50년간 사용할 수 있는 소형 원자력 전지를 개발했다. Ni-63을 전국 재료로 사용하는 전지는 당초 의료용으로 개발했지만 앞으로는 무선통신장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확대 개발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대구테크노파크 나노융합실용화센터가 지난 2017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원자력연구원, 맨텍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Ni-63 기반 베타전지 시제품을 개발했다. 이 전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출력값을 갖는 것으로 평가됐다. 국내에서도 베타전지 원천기술을 확보한 셈이다.
이 기술은 아바코라는 기업이 이전받아 지난해 9월부터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오는 2022년까지 87억원을 투입해 심해, 지하, 극지 등 극한 환경이나 인체에 반영구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독립전원시스템을 개발해 상용화 할 계획이다. 첫 과제로 원전시설물 방사능을 감시할 수 있는 독립전원 응용시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 = 수소경제시대의 핵심이 될 전지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울산에서 수소경제시대를 언급하면서 관심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을 통해 열과 에너지는 얻는 전지다.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온전지의 약 5배에 달하기 때문에 성능도 뛰어나다. 수십년 전 만화책에 나온 물로 가는 자동차를 구현해 줄 차세대 전지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하는 수소차는 전기차에 비해 훨씬 긴 주행거리와 짧은 충전시간을 자랑한다. 공기정화 기능도 우수하다. 다만 아직 발전장치가 너무 복잡하고 비싸 아직은 상용화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전기차는 전지와 모터만 탑재하면 되지만 수소차는 수소연료탱크와 모터 외에 발전장치까지 함께 탑재해야 한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차뿐만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설비에서도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자체와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한국동서발전은 최근 현대자동차와 함께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1MW급 수소연료전지 발전설비를 구축한다. 이에 앞서 강동에너지와 네모이엔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서부발전도 지난 2월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산업단지에 국내 최대 규모인 200MW급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건립하기로 하고 경북도와 MOU를 맺었다. 현재 수소연료전지 세계 시장 규모는 438억달러이며 국내시장은 6000억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전고체전지와 공기전지 = 전고체전지는 리튬이온전지의 양극과 음극사이에 액체전해질과 분리막을 고체전해질 층으로 바꾼 것이다. 액체 형태 전해질이 충격에 약하고 폭발 위험이 있다는 단점을 보완하는 개념이다.
해외에서는 일본 토요타 자동차가 전고체전지를 탑재한 전기차를 시험운행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삼성SDI와 LG화학, 현대자동차 등이 최근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한국전기연구원 연구팀이 저온 열처리 방법을 활용해 전고체전지의 실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새로운 공정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 개발 초기 단계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공기전지는 공기 중에 있는 산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전지다. 금속 전극을 산소로 대체한 것으로 무게가 가벼운 것이 장점이다. 전기를 축적할 수 있는 양도 리튬이온전지의 5~10배에 달한다.
하지만 아직은 수명이 짧고 어느 순간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단점이 있어 해결해야 할 기술의 한계가 많다. 일본 후지쯔 계열 전자부품업체인 FDK, NTT 등이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초보 수준의 개발단계라 상용화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리튬전지 = 성능향상과 용량증대, 안전성 등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여겨 볼만한 대안이 바로 폭발 위험이 없는 고체리튬이온전지와 에너지 저장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인 리튬황전지다. 물론 아직은 실험실 수준이라 상용화 가능 여부는 불투명하다.
고체리튬이온전지는 UNIST가 최근 고체이온전도체를 개발하면서 가능성을 높였고, 리튬황전지는 성균관대와 포스텍이 안정성과 내구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기술을 개발해 눈길을 끌었다. 리튬황전지는 에너지 저장능력이 리튬이온전지의 5배에 달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다만 충·방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황의 중간 생성물이 전해질에 쉽게 녹아 수명이 줄어드는 것이 단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튬이온전지는 세계적으로 전기차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시장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가 오는 2040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것도 리튬이온전지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 세계 자동차용 리튬이온전지시장은 57.5GWh였지만 오는 2020에는 두배가량 증가한 119.8GWh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다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다양한 IT기기에 사용되는 소형 리튬이온전지까지 합치면 시장볼륨은 이보다 훨씬 커질 전망이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