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병원의 인공지능(AI) 활용이 중국 대비 30분의 1 수준으로 나타났다. 규제에 발목이 잡혀서 혁신을 주저할 경우 중국에 밀려 의료 산업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13일 KOTRA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인터넷·AI 등을 결합한 인터넷병원·무인진료소 등을 확대하고, 의료 AI 전문 인력 확보에 투자했다. 현재 기술력은 우리가 앞서지만 압도적인 적용 사례를 바탕으로 할 때는 우리나라 턱밑까지 추격해 왔다.
첸잔(前瞻)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 의료기관의 AI 도입과 활용률은 33.6%였다. 관련 시장만 136억5000만위안(약 2조3524억원)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세계 수준의 의료와 정보기술(IT)을 갖췄지만 도입·활용 측면에서는 중국에 한참 뒤처져 있다. 국내 병원 가운데 AI를 도입해 활용한 곳은 100여곳에 불과하다. 전체 비중으로는 1%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국내 의료 AI 생산 실적은 36억원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정부는 의료자원 분배의 불균형, 의료진 부족 등을 AI로 해결하기 위해 국가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인터넷+의료건강 발전 추진에 의한 의견'이 대표적이다. 이 정책에는 인터넷병원 개설 허가, 인터넷과 의료보험 결산 추진, AI 기반 무인진료소 확대 등이 담겼다.
인터넷병원은 예약부터 진료, 질환관리까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온라인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예약, 건강 상담, 관리 서비스가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되면서 방문이 필요하지 않다. 중국 디지털헬스케어 기업 주이(就醫)160은 3000개에 이르는 제휴 병원과 1억80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지난해 11월 첫 선을 보인 무인진료소도 주목 받고 있다. AI 의사가 환자 목소리나 이미지를 판단해 초기 진단을 하고, 전문 의료진과 환자를 연결해 준다. 365일 24시간 개소해 환자가 시간 제약 없이 AI 의사 추천에 따라 약을 처방 받는다. 현재 중국 내 100여개 진료소가 오픈했으며, 일반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다.
중국 내 병원은 3만2476곳이다.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에 해당하는 3급병원은 2498곳(7.69%)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는 전체 가운데 50.9%에 이른다. 심각한 의료자원 불균형과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AI 같은 정보통신기술(ICT)로 풀겠다는 방침이다.
김현준 뷰노 이사는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병원이 AI를 도입하도록 예산과 제도를 지원하지만 국내는 수가를 포함해 도입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면서 “중국은 인프라뿐만 아니라 인민해방군 전체에 AI 기반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활용 의지가 높다”고 설명했다.
국내는 의료 AI 적용에 따른 수가 부재,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등 강력한 규제, 원격진료 불허 등 장애물로 의료 IT 적용이 늦어지면서 국민보건은 물론 장기적으로 의료 체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 과제인 만성질환자 관리에 허점이 있는 데다 추후 중국에 인력, 환자, 상품 등을 모두 빼앗길 수도 있다.
이언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병원 추진단장은 “고령화 등으로 만성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원격진료나 AI를 활용한 인터넷병원은 환자 관리와 국가 의료비 절감에 효과적”이라면서 “중국이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해 의료 AI 기술을 확보하고, 의약품이나 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까지 고도화해서 국내 환자까지 역으로 유치하면 우리나라 의료계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