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반대말이 '불의'가 아니라 '의리'라는 말이 있다. 의리의 힘으로 정의를 덮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이가” “동기사랑 나라사랑”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라며 무조건 충성을 강요하던 시대가 있었다. 무엇이 옳은 것보다 어떤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던 시대였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을 말하는 게 아니라 불과 30~40년 전 이야기다. 나라에 복종하고 조직에 충성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였다. 매일 국기 하강식을 하는 오후 6시에는 차렷자세로 애국가를 제창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했다. 그뿐인가? 당시 국민학생(현재의 초등학생) 때는 육성회비를 안 냈다고 복도에 나가 벌을 섰고, 중학생 때는 머리카락이 길다고 선도부원에게 머리털이 잘렸다. 시험 성적과 성적 순위는 친구에게 공개됐고, 떨어진 점수만큼 손바닥을 맞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심각한 인권 침해지만 당시에는 으레 그러는 줄 알았다. 아버지는 하늘이었고, 선생님은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됐다. 조직의 규칙과 명령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복종하는 것이었다. 조직이 우격다짐을 행하는지 비인격 행동을 저지르는지 판단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요즘 구성원에게 조직에 대한 충성심 운운하면 꼰대 취급을 받는다. 직장은 충성이 의무화된 대상이 아니라 비교 평가하고 취사선택하는 곳이다. 흥미와 재미를 찾아 9개월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3개월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는 세대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일한다. 조직에 충성하는 세대가 아니라 자신을 탐닉하는 세대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과 충성심으로 일하지 않는다. 상사의 실수나 조직의 불합리함도 참기보다 반기를 들고, 소신을 말한다. 이해득실을 따져 쉽게 다른 일자리를 찾아 옮기기도 하고 자신의 스케줄에 따라 퇴사 시점을 결정하기도 한다. 입사할 때 약속한 규정대로 맡은 일만 하지 특별히 타인의 일에 관심이 없다. 조직엔 딱히 나누기 어려운 업무가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이런 업무를 먼저 나서서 해 주는 밀레니엄 세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취관'이라는 신조어처럼 '가벼운 취향' 위주로 관계한다. 유연하고 담백한 것을 좋아하지 끈끈하고 부담스러운 것은 피하려 든다. 이런 세대에게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시대착오이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조직의 힘으로 개인의 자유가 희생된 선배 세대 때도 불합리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분 결실이 있다. 필자가 어릴 때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을 맡기고 일을 나가시던 부모님은 “우리가 없을 때는 네가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 동생 잘 돌보고 있어라” 하고 내게 책임을 지웠다. 고작 다섯 살짜리가 세 살 동생을 돌봤다. 열 살 무렵부터는 가벼운 설거지나 할머니 돌봄은 당연한 내 책무였다. 일찌감치 누군가의 보호자로서 나의 존재감을 키우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요즘 부모 세대는 “우리 걱정 말고 너나 잘 살아라” “손만 안 벌리면 다행이다”라며 집안일은 고사하고 방청소도 대신 해 준다. 그래서 “나” “나” “나”밖에 모른다. 나에게 꽂혀서 나조차 버겁다. 내가 제일 힘들고, 내가 최고 피해자다. 부모를 챙길 겨를도 없고 조직을 생각할 여유도 없다. 이것이 밀레니엄 세대의 그림자다. 자유롭고 가볍게 자신의 삶을 사는 이면에는 자신의 틀 안에 갇혀서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올 겨를을 잃었다.
선배 세대에게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 선배 세대의 무비판성 충성과 의리는 거절하지만 그들의 전체를 의식하는 태도와 타인을 책임지는 마음은 배울 필요가 있다.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세상을 책임지는 자로서 스스로를 크게 대하는 것은 배워야 한다.
시험을 본 학생은 자신의 성적만 걱정하지만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 학생 전체의 점수를 챙긴다. 학년주임은 그 학년 전체를 신경쓰고 교장선생님은 우리 학교 전체학생의 실력에 관심이 있다.
자신이 자신 안에 갇혀 있으면 자기밖에 모른다. “상처 받았어” “퇴사하고 싶어” “이민 가고 싶어” 하고 불평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이 상황을 주도할 힘이 없는 나약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다. 자기가 제일 힘들고 억울하고, 가장 크게 피해받고 외롭다고 여기는 것은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가 하는 자세다. 어릴 때는 헬리콥터맘의 보호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어른으로서 자기가 누군가를 보호해야 할 때다. 키덜트처럼 아직도 아이같이 굴면 안 된다. 나이만 어른이 아니라 진정한 어른인지 스스로 되돌아보자.
어른의 어원은 '얼이 큰 사람, 큰 혼'을 가리킨다. '항렬이 위인 사람, 큰 사람, 한 집안의 기둥'을 뜻하기도 한다.
진짜 어른은 “나는 누구를 보호해야 할까?” “우리 가족의 기둥으로서 내 책임은 무엇일까?” “우리 팀에 당면한 이슈는 뭘까?” “회사가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를 생각한다. 나만 염려하지 않고 남을 책임진다. 나로부터 빠져나와서 세상을 돌본다. 어른다운 어른을 보지 못해서 어른스러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것은 선배 책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은 조심스럽게 제언한다. 배우지 못했어도, 아니 못 배웠어도 이제 어른이다. 어쩌다 어른이 됐다 해도 어쨌든 지금 어른이다. 어른스럽게 행동하자.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이사 toptm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