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산업 현황에 대한 투자정보 통계가 주먹구구로 집계되고 있다.
정부 예산을 투입해 발간한 백서 통계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당국 조차도 해외 시장조사 기관 자료에 의존한다. 기초 자료조차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정책 수립이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다.
9일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금융위원회와 핀테크지원센터가 발간한 '한국 핀테크 동향 보고서'에 담긴 국내 핀테크 산업 관련 투자통계 대부분은 최소한의 사실 확인과 검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국내 핀테크 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털(VC), 사모투자(PE), 인수합병(M&A) 등 투자는 총 1조90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5~2016년 개인간(P2P) 대출 및 크라우드 펀딩 등 분야에 높은 투자 건수를 기록한 이후 2017~2018년에는 투자 건수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 보고서를 작성한 삼정KPMG 분석이다.
그러나 벤처투자시장에서는 삼정KPMG 분석이 실제 국내 핀테크 산업 투자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실제 삼정KPMG 통계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언급된 투자 사례를 기반으로 집계한 민간업체 자료를 활용했다.
해외 통계와도 확연하게 차이난다. 해외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이 집계한 지난해 한국 핀테크 투자 규모는 5억2000만달러다. 한화로는 약 6130억원에 이른다. 반면 삼정KPMG가 집계한 국내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 규모는 2243억원에 불과했다.
벤처투자업계에서도 빅테크(Bigtech) 기업의 전략 목적 투자, 공표되지 않은 사모펀드 투자 현황 등을 고려하면 2000억원 안팎 투자 규모는 지나치게 축소 집계된 결과라는 반응이다.
통계를 작성한 삼정KPMG 역시 “투자 정보에 대한 사항은 각 기업과 VC가 기밀에 부치고 있어 통계 작성에 한계가 있었다”면서 통계 신뢰성 부족을 인정했다.
문제는 이런 불확실한 통계가 정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여과 없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이 6일 선정한 '글로벌 핀테크 10대 트렌드' 역시도 CB인사이트 등 해외 시장조사업체의 시장가치 추정과 국내에 불확실한 통계에 근거해 시사점을 도출하고 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1~2년간 핀테크에 대한 투자가 크게 꺾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간 더디게 이뤄졌던 제도 변화 때문일 것”이라며 “최근 국내 핀테크 기업의 기업공개(IPO) 부진 원인을 경영권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는 것은 금융당국이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 역시도 핀테크 시장에 신뢰할 수 있는 통계가 없다는 점을 정책 수립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다.
금융위 관계자는 “핀테크 관련 전문 분류체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지만 워낙에 다양한 핀테크 산업 특성상 표준산업분류체계 등 기존 기준에 무조건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민간 단위에서 자체적인 핀테크 시장 집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향에서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 역시도 민간을 통한 자체적인 통계 확보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부가 직접 투자 통계 작성을 하는 것은 핀테크 기업에 또 다른 통제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핀테크산업협회 등 핀테크 산업 현장과 밀접한 민간 시장조사 업체나 기관이 자율로 관련 통계를 수집해 공표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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