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가 될 수 있는 재목은 항상 존재하지만 그를 알아보는 백락(伯樂)은 항상 있지 않습니다.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넘치는데 이를 골라내 사업화하고 장사가 잘되게 하는 것이야 말로 금융의 진정한 역할입니다.”
송민규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20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리더스 포럼에서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을 고르는 사람인 '백락'의 예를 들며 혁신금융 성공조건을 이처럼 역설했다. 그는 “현장에서 VC와 벤처기업의 인식은 서로 큰 차이가 있다”면서 “VC는 벤처기업에 단순한 자금공급뿐만 아니라 조력자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벤처캐피털리스트와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로 두 집단의 인식 차이를 비교했다.
조사 결과 VC입장에서는 투자기업에 대한 자금공급뿐만 아니라 기업이 필요로 하는 각종 지원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고 여기는 반면 정작 벤처기업은 VC 역할이 자금 투자 외에는 거의 없다고 느꼈다. 기업 경영에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응답도 2009년 23.3%에서 지난해 6.6%로 크게 떨어졌다.
송 실장은 “VC와 벤처기업 모두 자금공급 외에도 무엇인가를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특히 벤처기업이 해외에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언할 수 있는 역할이 가장 크게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 주제는 '혁신금융의 성공조건'이었다.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이 진행하고 송 실장이 기조강연을 했다. 패널로는 정성인 벤처캐피탈협회장, 이병태 KAIST 교수, 범진규 드림시큐리티 대표가 참여했다.
패널들도 혁신금융을 위해서는 VC의 역할과 모험자본 투자가 더욱 커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혁신금융을 위한 정부 지원 방식과 VC와 벤처기업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제각기 의견이 갈렸다.
범진규 대표는 혁신성장 주체를 혁신금융이 아닌 혁신기업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 대표는 “쿠팡이 e커머스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토스 같은 핀테크 기업이 금융 산업을 바꾸는 것처럼 금융이 아닌 기업 관점에서 혁신성장을 이룰 수 방안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인 회장은 지속적인 벤처투자 규모 증가에도 벤처기업이 자금공급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빠르게 바뀌는 산업 구조에서 찾았다.
그는 “과거 2000년대 초반 벤처붐 당시의 벤처투자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 부품·장비·소재 등을 공급하는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했다면 현재는 ICT제조 기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10%로 크게 떨어졌다”면서 “이제라도 기존에 경쟁력을 갖췄던 영역에 새로운 투자자금이 공급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 지원과 혁신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이병태 교수는 국내 시장에 투자할 대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도 벤처버블 이후에는 벤처투자가 가뭄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기술이 있을 때에는 벤처투자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정부가 해주겠다는 방식보다는 규제 개혁, 창업교육, 원천 기술 개발과 같이 진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