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00억원 규모의 기상청 차세대 슈퍼컴퓨터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레노버를 선정했다.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면 우리나라 공공기관에 처음으로 중국 제조사의 슈퍼컴퓨터가 도입된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조달청은 최근 기상청 슈퍼컴퓨터 5호기 도입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레노버를 선정하고 최종 협상을 하고 있다. 레노버는 미국 슈퍼컴 제조사 크레이와 경합한 끝에 우선협상 기회를 얻었다. 크레이는 이보다 앞서 2~4호기 사업의 공급자였다.
가격 협상 등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이달 안에 최종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레노버가 사업자로 선정되면 중국 제조사 슈퍼컴이 국내 공공기관에 도입되는 첫 사례로 기록된다. 현재 국내 슈퍼컴 운용 공공기관은 기상청을 비롯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기초과학연구원(IBS) 모두 크레이 제품을 쓰고 있다.
레노버가 우상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데는 가격 경쟁력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레노버는 남은 협상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종 계약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IT업계 관계자는 “레노버가 기상청 같은 대형 레퍼런스를 확보하기 위해 가격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공격적으로 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향후 한국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좋은 조건을 제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레노버가 미국 기업을 제치고 기상청 슈퍼컴 사업 수주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미-중 무역 분쟁 연관 여부가 주목된다. 미국과 중국은 관세 부과, 특정 기업의 사업 제한 등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휴전'을 선포하고 추가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는 미-중 무역 분쟁 이슈와 연계될 확률은 낮다고 분석했다. 미국 상무부는 중국 통신장비제조업체 화웨이를 거래제한 명단에 올린 데 이어 지난달 슈퍼컴과 관련된 중국 기업 및 국영 연구소 5곳이 포함된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발표했다. 여기에 레노버는 포함되지 않았다. 레노버는 2014년 미국 IBM x86서버 사업을 인수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중국 서버 기업의 스파이칩 파문 때 레노버 주가가 급락했지만 사실무근이었고, 슈퍼컴 제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시스템 부품 공급사, 기상청 시스템 구성을 보면 이후에도 문제가 될 여지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기상청에 앞서 슈퍼컴을 보급한 크레이가 기상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레노버가 유사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 현실적 관전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기상청 슈퍼컴 교체 사업은 내년 가동이 목표다. 총 예산은 600억원 안팎이다. 기상청은 기상관측 자료를 슈퍼컴에 입력하면 수치 분석을 통해 생산된 예상 일기도를 토대로 예보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4호기는 하루 약 16만장의 일기도를 생산하고 있다.
새로 도입하는 5호기의 계산 성능은 50페타프롭스다. 페타플롭스는 1초에 1000조번 연산 처리가 가능하다. 4호기(6.2페타플롭스)보다 8배 이상 빠르다.
5호기는 지구 대기를 작은 격자로 나눠 계산하는 프로그램인 수치예보모델 해상도도 높인다. 기존 17㎞이던 지구 전체의 격자 간격을 10㎞ 이하로 낮출 수 있다.
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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