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국산화, 다시 시작하자] <1>반도체…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 외에 아직도 빈 틈 많아

[소재 국산화, 다시 시작하자] <1>반도체…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 외에 아직도 빈 틈 많아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3대 소재 수출 규제 조치에 대응해 그동안 미진했던 소재 국산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졋다. 사진은 KIST 연구원이 차세대 소재를 연구개발하는 모습.[전자신문 DB]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3대 소재 수출 규제 조치에 대응해 그동안 미진했던 소재 국산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졋다. 사진은 KIST 연구원이 차세대 소재를 연구개발하는 모습.[전자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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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국산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우리나라는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하지만 핵심 소재는 해외, 특히 일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일 일본 정부의 3개 소재 수출 규제 조치는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받아들여졌다. 단 한 개 핵심 소재만 빠져도 전체 생산라인이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핵심 소재 국산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배경이다. 본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를 비롯한 주요 산업 핵심 소재 국산화 현황을 점검하고 소재 자립을 위한 과제를 시리즈로 짚어본다.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개시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외에 반도체 공정 곳곳에는 일본 소재가 긴요하게 쓰인다. 국내 소자업체들은 증착, 패키징 공정뿐만 아니라 첨단 공정으로 주목받는 극자외선(EUV) 공정에도 일본 소재를 중요하게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처럼 외교 갈등으로 인한 외부 타격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소재 국산화를 시작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각각 반도체 전공정에 해당하는 노광, 식각(에칭) 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소재다. 웨이퍼에 회로 밑그림을 그리고 본격적으로 회로 모양대로 깎아낼 때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일본은 수출 규제 한 번으로 반도체 제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카드를 치밀하게 준비해서 꺼내든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 공정들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소자 업체가 구현하는 반도체 공정 전 방위에 일본산 소재가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노광, 식각 공정 소재 외에 특히 후공정에 속하는 '패키징' 공정에서 일본 제품이 다수 쓰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패키징은 반도체 칩을 감싸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내·외부 간 원활한 연결을 돕고 발열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근 회로가 복잡해지고 칩 크기는 줄어들면서 효율적인 I/O(인풋과 아웃풋)를 구현할 패키징 방법이 필요해졌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패키징 공정에서 반도체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돕는 박막인 감광성 폴리이미드는 히타치와 스미토모 베이크라이트가, 각종 도금용 관련 소재들은 TOK첨단재료와 닛산화학 등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공정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력하고 있는 사업 분야인 만큼 향후 일본의 또 다른 공격 카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패키징 공정만을 위해 천안에 공장을 옮기고 있고, SK하이닉스도 패키징 설비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외에 증착 공정에 활용되는 AlN(질화알루미늄) 히터도 일본에서 생산된다. AlN히터는 반도체 박막 증착 공정에서 플라즈마를 생성시키기 위해 열을 발생시키는 소재다. 현재 일본 NGK가 글로벌 반도체 장비 1위 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에 100%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웨이퍼. [전자신문 DB]
반도체 웨이퍼. [전자신문 DB]

이밖에 웨이퍼는 일본 신에츠화학, 섬코 등이 큰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업체가 공급을 중단하면 반도체 공정 자체를 시작하게 될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미래 반도체 공정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를 개발하는 것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 흐름이다. 일례로 현재 블랭크마스크 시장은 일본 아사히글라스와 호야가 선점하고 있지만 최근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가 EUV(극자외선)용 블랭크 마스크 개발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외부 요인으로 국내 반도체 생산이 타격을 받지 않으려면 국내에서 하루 빨리 소재 국산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은 50% 남짓에 불과하다. 또 제품 성능 시험을 진행할 첨단 테스트베드 구축마저 지지부진해 국내 업체들은 해외에서 제품 테스트를 진행하는 실정이다.

또 다른 반도체 전문가는 “20년 전부터 소재부품 국산화 이야기가 나왔지만 생산 공정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 상황에 이르렀다”며 “앞으로 국내 수준이 일본 소재업체 수준까지 올라오려면 최소 5년이 걸리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서 미래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는 소재부품 연구개발(R&D) 사업을 집대성한 '소재산업혁신기술개발사업'에서 포토레지스트를 포함한 120개 단위 과제를 선정해 예비타당성 심사를 받고 있다.

신훈규 포스텍 교수는 “이번 일본 수출 규제 사태로 소재를 비롯한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기초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던 만큼 중·장기적인 생태계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