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격차를 좌우하는 '데이터 경제' 시대로 재편된다. 국가, 기업, 개인 할 것 없이 누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보건의료 영역에서 승자와 패자는 삶과 죽음으로 대변된다. 진료정보부터 유전체 정보, 일상 생활습관 정보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 질병 원인과 치료법, 예방까지 정밀의료 핵심도 '정보'다.
이 정보를 어떻게 얻고 활용할지 논란이 지속된다. 개인정보 활용·보호 이슈 속에서 환자가 이해당사자로 있는 건강의료정보는 더욱 민감하다. 병원·산업계-시민사회·환자 단체가 활용 찬반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국민은 자신의 의료정보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공유할 의사는 어느 정도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 주체가 된 의료정보 활용과 관리, 즉 자기결정권은 어떻게 확보할 지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전자신문은 병원, 산업계, 시민사회단체, 환자단체, 연구기관 전문가와 함께 개인 건강의료정보 가치 인식 제고와 자기결정권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참석자(가나다순)
△김미영 환자단체연합회 제1형 당뇨병환우회 대표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
△송승재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회장
△이은숙 국립암센터 원장
△최윤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회=김인순 전자신문 SW융합산업부장
◇사회(김인순 전자신문 SW융합산업부장)=데이터 경제 시대가 오면서 정보가 경쟁력인 상황이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데이터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이은숙(국립암센터 원장)=보건의료 분야에서 데이터는 환자 진료, 산업 발전 측면에서 굉장한 가치가 있다. 현대 암 치료는 개인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가장 잘 듣는 항암제를 이용한다. 가장 효과적인 약 처방은 물론 이 약이 효과가 있을지 미리 예측도 가능하다. 유전체 정보에 더해 임상정보, 생활습관 정보가 더해지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방효창(경실련 정보통신위원장)=정보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세계에서 건강보험공단과 같은 공공기관이 전 국민 데이터를 갖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이것을 활용할 경우 가치는 무한하다. 문제는 이 가치를 어떤 식으로 어떻게 만들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데 아직 갈 길이 멀다. 공익성 또는 활용성을 나눠 할 수 있는 부분은 작은 것이라도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김미영(환자단체연합회 제1형 당뇨병환우회 대표)=질환별로 데이터 가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것이다. 많은 환자가 건강정보가 노출됐을 때 불안감이 크다. 반면에 데이터를 활용해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 환자는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제1형 당뇨만 하더라도 최근 IT기기와 연동한 최신 의료기기가 많이 개발된다. 여기서 축적된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 질병을 개선하는 경험을 많은 환가 하고 있다.
◇최윤희(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는 정보 공유에 따른 성과를 경험했지만, 암과 같은 중증질환은 성과가 나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공유했을 때 편익이 무엇인지 얼마나 인지하느냐에 따라 데이터 가치 인식 여부도 결정된다. 데이터는 하나로써도 가치가 있지만 서로 연계됐을 때 위력은 배가 된다. 연결성을 확대하는 것이 데이터 가치를 높이는 핵심이다.
◇사회=산업연구원 '개인 건강의료정보 인식도 조사'에서도 보듯 국민 10명 중 7명은 자신의 의료정보가 신약이나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에 활용되는지 모른다. 데이터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주체인 개인은 이를 인지 못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보나.
◇송승재(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장)=2000년대 '황우석 사태' 이후 환자가 의료기관 원무과에 진료 접수할 때 개인정보 활용 관련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병원에서는 사전 동의를 전제로 임상데이터웨어하우스(CDW)도 구축했다. 이 데이터는 병원 내 의료진이 환자 진료나 연구 등에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이 기반이 개인이 동의한 건강의료정보다. 하지만 대부분 동의했는지 조차도 모른다. 이것은 규제 이슈가 아니라 인식과 교육 문제다.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려야 선택권도 보장할 수 있다. 정부가 의료법에서 홍보나 교육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김미영=일반인도 휴대폰이나 보험을 가입할 때 가입절차 동의를 위한 전문을 다 읽어보지는 않는다. 일반인이 이렇다면 환자는 더 여력이 없다. 환자는 물론 그 가족도 온 관심사가 치료에 있기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보 수집과 활용을 위한 동의서를 확인할 때도 막연하게 치료 과정 일부로 생각해 당연시 여긴다. 환자 아닌 일반인은 이런 과정조차 평상시 밟을 일이 없으니 의료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더더욱 모른다.
◇방효창=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 의료정보를 활용할지 여부도 병원에 가서야 알 수 있다. 동의절차도 대부분 병원 도착하자마자 진행되는데, 사실 아파서 왔는데 동의 절차를 집중해서 진행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동의를 받는 사람이 간호사가 아니라 별도 인력이 있어야 한다. 개인 의료정보와 어떻게 활용되는지, 동의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충분히 설명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인력이다. 보호자를 대상으로는 동의 과정을 차분하고 자세히 읽어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개발해도 좋다.
◇이은숙: 현재 병원에서는 개인정보 활용 동의 절차가 있고, 임상시험 동의는 따로 인력을 배치해 절차를 진행한다. 그냥 만들어지는 데이터와 특정 목적에 따라 만드는 데이터 동의 절차가 다른 것이다. 이제는 보호자뿐만 아니라 환자 본인도 동의해야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정보는 수십만명 이상 많이 모여야 더 가치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가치를 꾸준히 홍보하고 활용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악용에 따른 징벌적 손해배상 등 강력한 처벌 조항도 필요하다.
◇사회=조사 대상 10명 중 약 8명은 개인의료정보 권리가 개인에게 있다고 답했다. 개인이 의료정보 자기결정권을 갖는다고 생각하는데, 실질적으로 충분히 보장받고 있다고 보나.
◇김미영=한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8년간 의무기록을 봤는데 그 양이 백과사전 한 권을 넘어섰다. 여기서 개인이 의미 있는 데이터를 고르는 것은 정말 어렵다. 디지털화된 형태로 데이터를 받으면 보관이나 이동 등도 편한데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이다.
내가 주인인 데이터 활용도 어렵다. 병원 데이터는 일반인이 활용하기 어렵고, 웨어러블 기기로 축적한 데이터는 병원 시스템과 연동되지 않는다. 파편화된 건강 데이터는 활용이 제한적이며 가치도 떨어진다. 권한, 권리를 논하기 전에 데이터의 접근성과 활용성이 어려운 구조부터 해소해야 한다.
◇이은숙=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은 그들의 수요와 기대를 충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 병원에서는 환자가 이미 동의했던 부분이라도 다른 연구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다시 동의를 받아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 자기결정권에 바탕을 둔 동의 절차를 밟았다면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나 다른 거버넌스 체제에서 활용해도 된다고 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파편화된 데이터는 의미가 없고, 뭉쳤을 때 힘이 된다. 데이터 거버넌스와 사회적 합의 구조를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송승재=데이터 활용과 환자 편익,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여러 정책이 추진 중이다. 진료정보 교류와 마이데이터 사업이 대표적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인프라 부족으로 의료기관에서 개인 데이터를 받는 게 더 어렵다. 유럽개인정보보호법(GDPR)에서 말하는 데이터 이동권 역시 정부가 준비 중이지만 속도가 더디다. 사회 각층에서 목소리를 내서 속도를 빠르게 할 필요가 있다.
◇방효창=마이데이터 사업이나 진료정보 교류사업 모두 시범사업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개인이 동의하면 의료정보가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넘어간다. 개인은 동의만 하고 데이터가 넘어가버리면 사실상 자기결정권은 없는 것이다. 데이터가 어떻게 이동하고 어떻게 활용되는지, 성과에 대한 보상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게 없다. 자신의 정보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는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이것을 확인해 활용 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보장 받을 수 있다. 단순히 동의 여부만 체크해야 하는 현 구조는 절대 신뢰를 쌓을 수 없다.
◇사회=조사대상 10명 중 8명이 사회공공 이익을 위해 공유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연구개발이나 결과물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거나 국가 처벌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는 등 불신도 여전하다. 공유 의사는 있지만 그 과정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송승재=병원은 괜찮지만 기업에 데이터를 주는 것은 거부감이 크다. 이런 부분은 산업계가 반성을 해야 한다. 다만 기업은 임상시험을 할 때 병원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데이터 수집부터 관리까지 의료기관 신뢰수준과 함께 한다. 민간 데이터를 산업계가 단독으로 확보해 활용하는 경우는 없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국민 불안감을 키우는 것도 불신의 원인 중 하나다. '데이터를 넘겨준다'라는 의미도 마찬가지다. 현재 마이데이터 사업 등도 개인 데이터를 이관시키는 게 아니라 이동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최종 결정은 개인에게 있다.
◇이은숙=신뢰가 부족하다보니 데이터 활용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늦춰진다. 규제가 지속되면서 피해는 우리나라 환자와 기업, 병원이 다 받는다. 특히 강력한 규제로 우리 기업, 병원은 발이 묶여있지만 외국에서는 여러 의료기기나 웨어러블 기기로 우리나라 국민 데이터를 가져가는 상황이다. 연구 논문을 봐도 우리나라 의사가 못내는 데이터를 외국에서는 낸다.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되면 데이터 수집이나 접근을 막기 어렵다. 우리나라만 공회전 상태인 것이다.
◇김미영=우리나라에서 연간 약 10만명이 임상시험에 참여한다. 임상시험 참여자는 기본적으로 병원에 대한 신뢰가 있어 데이터를 공유한다. 정부나 병원에는 공익적 목적에 한해 기꺼이 데이터를 공유하지만 산업계는 좀 다르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 디지털화된 데이터 접근권도 높여야 한다.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결과를 피드백 받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 플랫폼은 공공적 틀 안에서 이용되고 검증돼야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사회=의료정보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가진 가치를 알리고 접근권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진 것 같다. 이를 위한 방안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해달라.
◇이은숙=임상연구에서는 별도 인력이 있기에 충분히 환자 알권리를 보장하려고 한다. 다만 진료 등 의료 현장에서 이것을 어떻게 더 충족시킬지 고민이다. 알다시피 대형병원이나 우리 같은 국가 의료기관은 환자가 정말 많다. 진료 환경도 열악한데 이 가운데서 환자에게 의료정보 가치를 전달하고, 공유 혹은 활용을 위한 동의 절차를 매끄럽게 밟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 이와 함께 데이터 공유에 따른 혜택을 제공하는 모멘텀이 필요하다. 성과가 공유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신뢰도 쌓인다.
◇방효창=의료정보를 보호하면 활용을 못하다고 생각한다. 보호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고, 충분히 활용 가능한 부분이 있다. 이 둘을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유럽은 GDPR 등에서 행위 관련 내용을 법에서 명확히 규명한다. 제도권에서 세밀하게 의료정보 활용 관련 가이드라인을 주면 혼란이 줄어들 것이다.
◇최윤희=세밀한 철학과 비전이 균형 있게 가야한다. 건강정보 공유 목표가 국가 사회 공익이지 특정 단체 경제적 이익이 아니다. 이 철학을 신뢰하는 사회가 될 전략이 필요하다. 환자, 국민, 소비자 등이 생애 전주기 건강의료정보를 볼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을 갖춰야 한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차원이다.
◇송승재=이런 논의의 장이 많아야 한다. 현재 논쟁 중인 상당수 내용은 의료정보 내용과 기관에 따라 관점이 다른 부분이다.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논쟁 중인데, 사회 각층이 참여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 이해관계를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김미영=데이터 공유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환자도 서비스 이용 경험 등을 공유해 기능을 개선하는 피드백을 주고, 이 결과로 자신의 건강이 좋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제공한 데이터로 사회 전체가 발전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와 동시에 최근 IT 접목이 활발한 디지털헬스케어 영역도 노인분들이 접근성을 높이도록 다양한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리=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