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학 B교수는 최근 기업과의 연구개발(R&D) 계약을 앞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기업이 제시한 계약서에는 연구 과제 기간 안에 나온 모든 지식재산권(IP)을 기업이 단독 소유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었다. B교수는 연구비 확보가 급해서 어쩔 수 없이 계약서에 사인했다.
#C대학 D교수는 기업으로부터 R&D 협력 제안을 받았지만 불리한 조건에 고심하다 계약 수정을 요청했다. 교수가 획득한 유사 특허를 기업이 무상 사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문제 발생 시 책임도 모두 연구자에게 지웠다. 제3자의 영업비밀, 특허권, 저작권 등의 침해가 발생한 경우 연구자가 기업 손실을 전부 배상하도록 했다.
기업과 대학 간 산·학 협력 시 학교 연구자에게 불리한 계약 관행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쟁력이 뛰어난 일부 연구자를 제외하면 특허 등 결과물 권리를 포기해야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등 불공정 계약이 비일비재하다.
2일 대학과 연구계에 따르면 전국 77개 대학으로 구성된 한국대학기술이전협회는 최근 정례회의에서 기업과 대학 간 연구과제 계약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논의했다. 2012년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산학연 협력연구 협약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불공정 계약 개선 노력이 일었지만 7년여가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꾸준히 문제가 제기된 탓이다.
회의에서는 4개 대학이 실제 산·학 협력 계약 체결 또는 포기 사례를 공유했다. 협회 분석 결과 일부 기업이 발주하는 R&D 계약 조건에 독소 조항이 담겨 있었다. 연구 과제로 나온 IP의 기업 단독 소유, 연구 과제 이전에 교수가 개발한 IP 무상 사용, R&D 후 수년 간 제3자와의 협력 제한 등 조건이다.
기업은 성과를 최대한 확보하는 대신 연구 과정이나 이후 발생하는 특허 침해 등 문제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연구자에게 돌렸다. 서울 소재 모 대학 교수는 “교수 개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구조”라며 대응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서울 소재 대학 산학협력단(이하 산단) 소속 변리사는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상당수 계약이 연구 성과를 연구자와 공동 소유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면서 “기업은 아예 이런 내용을 표준계약서로 활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상황을 전했다.
통상 연구자는 직무 발명을 통해 개발한 기술 이전 등으로 발생한 수익을 일정 부분 보장받는다. 산·학 계약 시 이를 막아 놓으면 연구자가 개발한 기술이 향후 거액에 거래거나 기업 제품에 활용돼 고부가 가치를 창출해도 보상을 받을 길이 없다.
대학 차원의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대학 교수는 불공정 요소를 인지하고도 눈앞의 연구실 운영비나 실적 확보에 급급해 계약을 체결한다. 대학 스스로 불공정 계약의 고리를 끊으려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정책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대학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2012년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장기술 대학기술이전협회장은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대학이 연구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는 산·학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기업과 대학이 서로를 동등한 R&D 파트너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 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