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업체가 한 달 가까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고성능 헤파(HEPA)필터를 받지 못하면서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가 반도체 3개 소재 외 다른 품목으로 확산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해당 필터를 수년전부터 수입해 왔지만 이처럼 납기가 지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 게 국내 업체의 주장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A업체는 일본 N사에서 수입하는 헤파필터를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물량을 받기로 돼 있었지만 한 달 가까이 수입이 지연되고 있다.
A업체 관계자는 “지난달 13일 물량을 받기로 한 헤파필터 물량을 아직도 받지 못했다”면서 “지난달 말까지 기다리다가 계속 수입이 안 돼 정부에 대체재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A업체는 2009년부터 N사에서 헤파필터를 수입했다. 납기가 이처럼 늦어진 것은 이전에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N사 한국법인은 일본 경제산업성에서 수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주 물건이 한국에 들어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A업체 관계자는 “N사 한국법인에서는 물량이 이미 일본 부두 창고에 와 있고, 일본 경제산업성에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알려왔다”며 "다만 다음주에 물건이 한국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6일 오후 전했다"고 말했다.
헤파필터는 공기 속에 떠다니는 0.3마이크로미터(㎛) 이상 크기의 미세입자(초미세먼지)를 99.97% 제거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필터다. 방사성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개발됐다. 최근에는 공기청정기에서도 활용된다.
A업체는 초미세 입자까지 차단하는 고성능 헤파필터를 사용한다. 올해 초 국내와 중국에서 대체재를 마련하려 했지만 양산할 수 있는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일본산을 수입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수출이 지연되면서 물량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업체가 수입하는 헤파필터가 전략물자 민감 품목에 해당하는지 파악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특정 사양의 헤파필터를 전략물자 통제 목록에 포함해 관리하고 있다. 전략물자 가운데에서도 무기 또는 무기와 직접 관련된 '민감 품목'에 해당하면 포괄 허가가 아닌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략물자관리원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특정 스펙 헤파필터를 전략물자로 포함시켜서 관리하고 있다”며 “N사가 경제산업성의 자율준수무역거래(CP) 기업에 포함되더라도 개별 허가 품목이라면 일본 정부에서 수출을 최대 90일까지 심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지난 7월 우리나라에 대해 수출 제한 조치를 실행한 이후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외 수출을 지연한 것으로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이 추가 수출 제한 의도로 수출을 지연했다면 파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수입이 지연된 헤파필터의 구체적인 사양과 일본이 수출을 지연한 이유를 파악할 방침이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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