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새 내각 꾸려 R&D 현장 찾았지만…예산안 심사, 국정 운영 '산넘어 산'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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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새 내각을 꾸리자마자 연구개발(R&D) 현장으로 향했다. 전날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단행 후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고 일본의 경제보복 극복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강조했다. 소재·부품·장비의 기술 경쟁력의 근간으로 R&D 중요성을 내세우며 꾸준한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R&D를 통해 나온 성과가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계구조 정착에 역점을 두겠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이 현장 국무회의로 의지를 다졌지만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다. 조 장관 임명으로 국회 일정이 사실상 파행 수순을 밟고 있다. 내년도 R&D 예산안 심사 등을 포함한 일정 전반에서 난항이 불가피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개각 이후 새롭게 임명된 장관들이 참여한 첫 국무회의를 서울 성북구 소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개최했다. 국무회의 장소를 R&D 현장으로 택해 기술 개발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문 대통령의 이동 수단도 상징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수소차 '넥쏘'를 타고 KIST로 이동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가 아닌 외부 행사에 넥쏘 차량을 이용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을 앞뒤로 수행하는 차량 역시 수소차였다. 마침 이날은 국회에서 수소차 충전소 준공식이 열린 날이다. 취임 후 줄곧 강조한 미래차 산업 육성 의지를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 <출처: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출처:청와대>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앞서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를 방문해 실험실을 시찰하고 연구원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가져가고 그럴려면 양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 인력이 적시 적소에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장준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연구소에서 대학과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여기서 학위를 받은 인력은 바로 삼성이나 반도체 회사에 즉시 산업 인력으로 공급을 한다”고 설명했다.

인력이 충분하냐는 문 대통령 질문엔 “여전히 부족하다. 반도체를 민간에서 워낙 잘한다고 해서 정부 투자가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조금 적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MBE(Molecular Beam Epitaxy, 분자선 에피택시) 장비를 둘러봤다. 초진공 상태에서 원자 단위 반도체를 합성해 나노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필수 장비다. 다양한 화합물 반도체를 만든다.

문 대통령이 “이 공정에서도 일본의 부품 소재가 꼭 필요한가”라고 묻자 장 소장은 “여기 3개는 프랑스, 미국 장비다. 여기에는 지금 일본에서 수입해야될 그런 재료가 필요없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실험실 방문 후 서명록에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과학기술의 힘으로!'란 글을 남기고 국무회의가 열리는 국제협력관으로 이동했다.

이날 시찰에는 전날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동행했다. 최 장관은 이날 세종시에서 예정된 취임식을 치르기 전에 국무회의 참석으로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최 장관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를 지냈다. 우리나라 대표 반도체·인공지능(AI) 전문가다. AI 반도체 개발 연구를 담당하는 뉴럴프로세싱연구센터(NPRC)의 센터장을 역임했다. 문 대통령은 장 소장이 반도체산업 지원을 호소하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반도체 석학으로 모셨다”고 답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진 국무회의에서 소재·부품·장비 관련 R&D 투자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부는 내년 국가 R&D 예산을 24조1000억원을 편성했다. 소재부품 장비 자립화 예산을 올해보다 두 배 이상 대폭 확대했고 향후 3년 간 5조원을 집중투자한다. 이는 소재부품특별법 제정 이후 지난 19년 간 투입된 5조4000억원에 버금가는 규모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전략품목 100여개를 선정해 R&D를 통한 기술 자립화에 나선다.

문 대통령은 R&D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는 구조 정착을 강조했다. R&D 예산 규모가 커지는데 따른 성과, 효율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요기업과의 연계를 통한 사업화를 지목한 것이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소속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도 관련 분야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성과 연계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이 소재·부품·장비 관련 R&D, 산업체 지원 확대 등을 공언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국회 지원은 요원할 전망이다.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이 모두 조국 장관 임명에 반발하고 있어 정기국회와 내년도 예산안 심사의 정상 진행이 불가능하다. 조 장관을 둘러싼 국론분열이 극심해 국정운영에서도 차질이 우려된다. 예산심사 일정이 진행돼도 R&D 투자 세부 항목을 두고 여야 공방이 가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