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반도체 시장에서 극자외선(EUV) 공정이 주목받고 있다. 7나노 EUV 광원을 이용한 삼성전자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가 양산되고, 이 광원을 활용한 5나노와 3나노 양산 공정도 수년 내 구현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EUV 전용 생산라인을 내년 상반기 가동한다. 신설 라인은 기존 불화아르곤(ArF) 공정에서 쓰인 노광 기술과 방식이 아예 달라 새로운 부품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생태계는 아직 열악하다. 90% 이상 일본에서 수입해왔던 EUV 포토레지스트는 지난 7월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EUV용 마스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자체 생산한다. 그러나 제작에 필요한 장비와 소재는 역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례로 EUV 노광 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공급한다.
이런 생태계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국내 기업이 있다. 바로 이솔(대표 김병국)이 주인공이다. 이솔은 'EUV 솔루션'의 줄임말로 국내 반도체 펠리클 업체인 FST 자회사이기도 하다. 회사 이름대로 EUV 공정에 필요한 다양한 솔루션과 장비를 개발한다.
이 회사는 최근 독특한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바로 EUV 포토레지스트 개발 속도를 저비용으로 가속할 수 있는 장비다. EUV 포토레지스트는 EUV 노광 공정을 하기 전 웨이퍼에 발라야 하는 물질이다. 국내에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특히 국내 소재 중소기업은 1500억원을 훌쩍 넘는 EUV 노광기를 들여 실험할 여력이 안 된다. 선진 기술을 먼저 채용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과 협력에도 한계가 있다.
이솔이 개발 중인 '에밀레(EMiLE)'라는 장비는 기존 EUV 노광 장비처럼 EUV 마스크에 새겨진 회로를 축소 노광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신 EUV 노광기와 동일한 파장인 EUV 빛으로 '간섭 현상'을 응용해 포토레지스트 성능 평가를 한다.
구체적으로 EUV 노광기에 장착된 포토마스크와 EUV를 반사시키는 11개 미러를 모두 걷어내고 웨이퍼와 EUV 광원 사이에 금속 부품 하나만을 놓는다.
이 부품에는 좌우 일정한 간격으로 두 개의 사각형 구멍이 뚫려있다. 사각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폭 32nm의 가는 금속 선들이 일정하고 촘촘하게 배치돼 있다. 이를 '그레이팅(grating)'이라고 한다. 이는 빛의 회절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EUV 광원이 두 사각형 구멍을 통과해 그레이팅을 만나게 되면 다양한 방향으로 빛이 회절돼 꺾인다. 구멍을 통과한 빛이 서로를 간섭하기 시작한다. 이 때 빛의 세기가 세지거나 약해지는 부분이 생긴다. 센 부분은 EUV용 레지스트에 닿아 16㎚ 폭의 세로줄 패턴을 형성한다.
반도체 회로 모양은 아니지만, 빛으로 패턴을 찍어내는 노광 공정 특성을 그대로 반영해 포토레지스트 패턴 형성 성능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솔은 관련 장비 특허 출원도 마쳤다. 이동근 이솔 부사장은 값비싼 EUV 노광기가 없어도 EUV 포토레지스트를 충분히 실험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장비 가격은 기존 EUV 노광기 10분의 1가량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내 소재 회사들이 이 장비로 EUV 포토레지스트 성능 실험 기회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며 “단기간에 EUV 포토레지스트 개발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솔은 올해 초부터 '존플레이트 렌즈'를 이용한 EUV 마스크 리뷰 장비 개발을 거의 마친 상태다. 회로 모양이 그려진 EUV 마스크 불량 유무를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검사할 수 있는 장비다.
김병국 이솔 대표는 “앞으로 설립될 반도체 테스트베드 등에 이 장비를 활용하면 일본 포토레지스트 회사와 기술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더욱 가격을 낮춘 EUV 포토레지스트 감도 평가 장비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