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배분·조정이 필요한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이 22년 전과 비교해 7.5배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가 R&D 사업을 대량 일몰하는 '장기 계속사업 일몰제'를 추진한 이후 각 부처별로 중복 사업을 추진한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 중소기업 혁신지원 프로그램(SBIR)과 같이 한 부처 중심으로 산업진흥을 위한 R&D 제도를 단순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최근 발간한 '범부처 공통 R&D 지원사업 운영 필요성 연구' 보고서에서 2020년 정부 연구개발 예산 배분·조정 대상 세부사업 수가 814개로 1998년 14개 부처 108개와 비교해 7.5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올해 신규로 추진된 국가연구개발사업도 192개로 19개 부·청·실·위원회에서 7787억원을 투입했다. 2018년 75개 신규 국가연구개발사업이 추진된 것과 비교하면 2.56배 증가했다.
이는 장기 계속사업 일몰제가 2016년 시행되면서 신규 R&D 사업이 대거 진행된 것인 원인으로 꼽힌다. 장기 계속사업 일몰제는 장기 계속사업을 정비하기 위해 2016~2020년 동안 운영되는 제도다. 일몰 사업으로 분류될 때 계속과제 연구만 지원하면서 사업을 일단 폐지한다. 이에 각 부처에서는 신규 예타 등을 통해 다시 사업성을 검증받는 작업에 돌입했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는 2015년 204개 대상사업을 선정했고, 2016년부터 올해까지 일몰된 사업은 131개에 달한다.
KIAT는 예비타당성 조사 대응을 위한 신규 사업 기획 과정에서 과다한 자원손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KIAT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예비타당성 대응관련 19개 전담기관이 발주한 용역은 83건이다.
특히 내년 장기 계속사업 일몰제 종료를 앞두고 부처별로 신규 사업을 대폭 늘리면서 행정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KIAT가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에 따르면 올해 신규 사업 규모는 전년 대비 247.5%(5546억원)로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각 부처별 유사 사업도 나타났다. KIAT는 국토교통부 '국토교통기술사업화지원사업', 해양수산부 '해양수산기술사업화지원사업', 산업통상자원부 '사업화연계기술개발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투자연계형공공기술사업화기업성장지원',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기술사업화역량강화사업'이 그 예다. 예비타당성 조사 선행과정인 '기술성 평가'에서 '기존 사업과의 차별성 및 연계 방안'이라는 평가 항목 때문에 유사사업이 잇따라 나왔다고 분석했다.
KIAT는 효율적 자금 투입을 위해 미국 중소기업 혁신지원 프로그램(SBIR) 사업 추진 방식·운영구조를 선례 삼아 국내 R&D 사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SBIR는 한 부처 주관 아래 12개 연방기관과 수십개 연구소가 동시에 참여하는 범부처 중소기업 R&D 통합지원 플랫폼을 구성한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주도하는 '목적형 사업'과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형 사업'으로 R&D 유형을 나누고 부처 간 역할도 새로 정립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KIAT는 “사업 체계화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정부 R&D사업 유형을 목적형 사업과 시장형 사업으로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며 “산업부를 제외한 국토부, 해수부 등 기타 산업진흥부처는 '목적형' 사업에 중점을 두고 산업진흥 부처 간 역할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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