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한 드라마 '왓쳐'는 경찰 내부 비리조사팀이 권력의 실체를 파헤치며 정의의 의미에 대해 되묻는다. '부패' 경찰을 잡는 경찰로 동료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동료로부터 내부의 적으로 기피 받는 감찰 수사관이 주인공이다.
경찰 조직 내 암약하는 부패 경찰과, 뒤를 봐주는 배후 세력은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재벌그룹 뇌물 장부를 되찾기 위해 계속 범죄를 저지른다. 결국 장부 원본이 담긴 USB 메모리가 감찰반 손에 들어오면서 비리 검·경 소탕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시대가 흐르며 과거 영화·드라마 등에 등장하던 노트 형태의 뇌물 장부도 USB 메모리라는 디지털 저장방식으로 변화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디지털 정보임에도 뇌물 장부 '원본'이라고 표현된다는 점이다.
흔히 파일 형태로 저장된 디지털 정보는 무제한으로 복사할 수 있고 쉽게 수정·변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맞는 말이다. 처음 작성된 원본이 삭제되더라도 복사본이 남아 있으면 뇌물 장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원본'이 갖는 의미가 완전히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복사와 공유 과정에 언제라도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정보가 법적 증거 자료로 채택되기 위해 '디지털 포렌식'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포렌식은 PC나 노트북, 휴대폰 등 각종 저장매체나 인터넷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이다. 단순히 있는 자료를 찾는 것을 넘어 삭제해 지워진 정보를 복구하거나 포털 검색 키워드, 입력 시간 확인도 가능하다.
왓쳐에 나오는 뇌물 장부와 같이 문서 파일로 저장된 디지털 정보라면 언제 작성했고 수정이 이뤄졌는지, 복사본인지 여부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문서 파일에 남아있는 다양한 디지털 흔적을 조합하고 분석하면 작성 과정에 어떤 타이핑 습관과 패턴을 보이는지가 일종의 필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 작성자가 누구인지까지도 식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 우리는 스마트폰과 PC로 대부분 업무를 처리하고 일상생활을 한다. 반면 곳곳에 개인정보와 디지털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되곤 한다. 모든 게 한 개인이 살아가는 디지털 정보의 원본인데도 말이다.
최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30여년 만에 특정됐다. DNA 분석 기법 발달의 승리라는 평가다. 과거에는 잡을 수 없던 단서를 기술 발전을 통해 잡아냈다.
디지털 포렌식 기술은 어떨까. 사소하게는 온라인 악플부터 각종 범죄 행위에도 정보 기술이 활용되는 판이다. 익명 뒤에 숨어, 혹은 해외에 있거나 계정을 삭제해가며 법망을 피한다. 그럼에도 흔적은 남는다. 결국엔 잡힐 것이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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