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일본 수출제한 조치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절차 중 하나인 양자협의를 진행하기 위한 탐색전에 돌입했다. 정부는 일본 정부 대응에 따라 양자협의에 참여할 대표단 등을 조율할 방침이다. 양자협의에서 양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연말이나 내년초 패널 설치 과정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는 패널 심리에 돌입하기 전에 일본 정부와 협의하면서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한 국내 피해를 입증할 객관적 사례 수집이 중요하다고 분석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등을 중심으로 일본 수출규제건을 WTO에 제소하는 절차로 일본 정부와 협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24일 밝혔다.
우리 정부는 지난 1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품목에 대한 일본 수출 제한 조치를 WTO에 제소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양자협의 수락 의사를 우리 정부에 서한으로 공식 통보했다. 이후 양국은 공식 서한이나 구두 설명을 주고받지 않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 20일 이후에는 일본 정부와 서한 등을 통한 의견 교환이 없었다”며 “20일에 일본이 서한으로 양자협의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외교채널을 통해 양자협의 일정을 합의하면 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례적으로 빠른 기간 안에 일본 정부를 WTO에 제소한 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전략을 짜고 있다. 통상 WTO 제소 관련 양자협의에는 과장급이 대표단으로 참여하지만 국장급이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에는 6개월에서 1년 이상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WTO 제소와 형태가 다르다”며 “WTO 분쟁해결을 위한 양자협의는 실무급 협의가 많은 탓에 관례상 과장이 협의에 참석했었지만 일본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에 따라 대표단 급 등을 고려한 전략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일본 정부에 제기한 양자협의 요청서에 따르면 우리는 일본 수출 제한 조치가 총 11개 조항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GATT 1조(최혜국 대우), 10조(무역규칙 공표 및 시행), 11조(수량제한의 일반적 폐지)와 함께 무역원활화협정(TFA), 무역관련투자조치협정(TRIMS), 지식재산권협정(TRIPS), 서비스무역협정(GATS) 등을 망라했다. 이 중 GATT 3개 조항을 중심으로 나머지 조항도 양자협의에서 언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는 “GATT 3개 조항 외 나머지 조항은 수출 인허가 라이선싱이나 지식재산권 관련 부수 조항”이라며 “GATT 3개 조항에서 승소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국이 양자협의 합의에 실패하면 돌입하는 패널 설치 절차는 연말이나 내년 초에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WTO 협정상 분쟁해결 절차에는 피소국인 일본이 양자협의 요청을 수령한 후 60일 안에 당사국 간 합의 실패 시 패널 설치를 요구할 수 있다. 오는 11월 이후에나 공식 분쟁해결 절차에 돌입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전문가는 패널 설치로 이어지기 전에 양국 간 양자협의에서 상호호혜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한다. 또 일본과 양자협의를 진행하면서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한 객관적인 피해 사례를 더 수집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송기호 변호사는 “한일 갈등이 통상뿐 아니라 안보 등 사안으로 전이돼 있기 때문에 양자협의를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절차라고 생각하지 말고 양국이 공통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개별기업에게 영업비밀에 가까운 내용이 있긴 하지만 우리 기업이 구체적으로 피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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