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일주일 동안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도착한 인천국제공항에서 처음 마주한 언론 기사는 울산 석유제품운반선 폭발사고였다. 울산대교 뒤로 솟아오른 거대한 불기둥 사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유해물질과 화학사고 관련 연구를 수행하면서 산업단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화학사고 사례를 봤지만 이번처럼 생생한 사고 영상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영화에서나 본, 화염이 치솟는 장면은 현장에 있지 않아도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다행히 선원들은 모두 구조되는 등 사고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는 적었다니 천운이 아닐 수 없다.
울산은 1962년 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환경오염 대표도시로 악명 높았다. 2000년대 이후에 태화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연어가 돌아오고 수영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생태환경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에는 태화강이 국가 정원으로 지정됐다.
울산을 여전히 산업도시로만 아는 사람이 많겠지만 알고 보면 울산은 산, 강,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관광자원 도시다.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대표 유물이다.
그러나 잦은 화학사고와 대기오염은 친환경 도시로 변모해 가는 울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울산은 여전히 중화학공업이 핵심 산업이기 때문에 화학사고에 취약하다.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 주요 산업도시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화학물질 물동량과 사용량이 많으면 육상과 해상 화학사고 발생 가능성이 짙다. 울산은 산업단지 시설도 노후화돼 대형 화학사고 발생 가능성이 농후한 도시다.
재난 분야에서 잘 알려진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대형사고에 앞서 중소형 사고와 크고 작은 문제가 먼저 발생한다. 경험상 대형사고, 중소형사고, 크고 작은 문제 발생 비율은 1:29:300이다. 이번 울산 폭발사고는 29에 해당하는 중형 사고로 보인다. 아직 전국 재난 수준의 대형 화학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짙다는 의미다.
2012년 경북 구미 불산누출 사고를 계기로 환경부 산하에 화학물질안전원이 생겼고, 다부처가 참여하는 화학재난 합동방제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중소형 화학사고 대응시스템은 대체로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재난 수준의 대형사고 대응 방안이나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울산을 비롯한 주요 공업도시는 아직까지 재난 수준의 대형 화학사고 대응 경험이 없다.
다소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화학 테러를 주제로 만든 영화 '판도라'와 '엑시트'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졌을 때 정부나 지자체는 이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초대형 화학사고가 발생하면 사고물질 파악에서 확산 예측, 방제, 구조, 대피 계획 등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 화학사고 연구 과정에서 만난 일선 소방대원은 “대형 화학사고가 터지면 아무 대책이 없다. 그냥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울산 폭발사고 때 해경 구조대원은 마스크를 썼지만 구토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주거 지역 근처 산업단지에서 비슷한 화학사고가 발생한다면 심각한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없다.
화학사고 진압 이후도 중요하다. 화학물질이 얼마나 유출됐으며 화학반응으로 새로운 유해물질이 생성되지는 않았는지, 화재로 발생한 미세먼지는 불완전연소로 생성된 발암물질을 얼마나 함유하고 있는지, 이러한 대기오염물질은 어떻게 주변으로 확산하는지, 대응 요원과 시민은 얼마나 오염물질에 노출됐는지 등의 확인이 필요하다.
화학사고 전후 대응 과정은 단순 사고처리 보고 차원이 아닌 연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해당 사고를 상세히 기록하고 분석해 대응 절차와 부처별 협업 등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축적해야 이전까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대형 화학재난사고에 대비할 수 있다. 이미 범정부 차원에서 재난 수준의 화학사고에 대응할 수 있는 상세 매뉴얼이 있고 현장 대응 기술도 개발돼 있는데 단지 보안상 이유로 공개하지 못할 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글이 나 혼자만의 기우였으면 좋겠다.
최성득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sdchoi@un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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