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촉발한 액상형 전자담배 유해성 논란이 국내에서도 뜨겁다. 정부는 사용자제에서 강력한 사용중지 권고로 적극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관련법을 개정해 액상형 전자담배 등 신종 담배 안전성 관리 강화를 위한 법적 기반 마련에 착수했고, 구성 물질을 분석해 유해성 여부도 검증키로 했다.
정부 정책을 두고 찬반 논쟁도 뜨겁다. 사각지대에 있던 액상형 전자담배 등 신종 담배 관리 강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료계와 명확한 데이터 없이 국민 불안만 조장한다는 담배업계의 비판이 팽팽하다. 내년 상반기 폐손상과 액상 성분 간 연관성이 규명될 때 까지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 액상형 전자담배 종합대책은 크게 △안전관리 근거 마련 △유해성 검증 △수입·유통 규제 강화 △유해성 홍보 등으로 나뉜다. 특히 기존 담배 품목에 허용되지 않았던 줄기·뿌리 니코틴 담배까지 담배품목으로 정의하는 동시에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판매 중지시킬 수 있는 조항을 명문화하는 등 강력한 제제 조치를 예고했다.
동시에 담배업계가 주장하는 일부 액상성분에 한해 폐손상을 일으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위해 임상 역학조사까지 펼친다. 일반 담배나 궐련형 담배보다 안전하다고 알고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 성분을 면밀히 분석해 유해성을 살피겠다는 의도다. 이 밖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액상을 국내로 들여올 때 구성물질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출하고, 청소년 등 판매를 엄격히 관리·감독한다.
정부 조치에 의료계는 전반적으로 환영한다. 정부가 강조했던 안전성 관리 강화와 청소년의 접근성을 차단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의견이다.
백유진 대한금연학회장(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은 “미국이 액상 전자담배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소년의 흡연율이 급속도로 높아지기 때문”이라면서 “2017년 대비 2018년 미국 고등학생 흡연율은 78%나 올랐는데, 액상 전자담배 영향이 컸다”고 지적했다.
정세영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일반적으로 덜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유해물질은 어떤 게 있는지 밝혀진 게 없다”면서 “이번 미국 사례에서도 보듯 의심 사례가 지속해서 발생할 경우 정부가 사용을 중지시키거나 이에 준하는 권고를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을 자제하거나 중지하는 사례는 늘고 있다. 미국 보건당국은 중증 폐손상, 사망사례와 액상 물질 간 인과관계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고, 사전 판매허가를 받지 않은 가향 제품은 판매 금지할 계획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가향 전자담배 액상 판매를 금지했고, 인도는 전자담배 생산·수입·판매·보관 자체를 전면 금지했다. 중국은 인터넷에서 일부 액상형 전자담배(쥴) 구입을 못하도록 했고, 말레이시아 역시 전자담배 판매 전면 금지를 검토 중이다.
이 같은 추세 속에 우리나라도 공중 보건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유해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게 의료계 주장이다. 특히 의료계는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듯 구성 물질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요구되며, 그 전까지는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많은 희생자를 낳은 옥시 사태의 학습효과로 액상형 전자담배에서도 폐손상 원인 물질에 대한 역학적 조사 요구가 높다”면서 “실제 액상형 전자담배는 여러 물질을 섞을 수 있는데, 합성 화학물의 성분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그 위험도 역시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담배 업계가 주장하는 일부 물질에 한정한 유해성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담배업계는 미국에서 발생한 중증 폐손상과 사망 사례 78%가 대마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카라비놀(THC)과 비타민E 아세테이트를 혼용한 것을 근거로, 원인 물질을 두 개로 한정한다. 미국은 대마가 합법이지만 우리나라는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어 두 물질이 들어간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백 회장은 “질환자와 사망자가 THC, 비타민E 아세테이트를 혼용한 사례가 많지만 여전히 10%가 넘는 사례는 니코틴만 흡입했다”면서 “대마 성분 역시 우리나라도 마약 청정국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판매·유통 관리를 강화하고, 구성물질과 질병 간 상관관계 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도 “질병을 고치는 의약품도 안전성 이슈가 발생하면 판매를 중단하거나 경고 문구를 삽입한다”면서 “인체에 유해한 담배는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특히 미국에서 발생한 환자, 사망자 80% 가까이가 35세 미만 젊은층이다. 기저질환이 없는 상황에서 원인은 액상형 전자담배로 보고, 역학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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