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대(G) 이동통신 시장이 개화하는 가운데 관련 특허분쟁이 업계에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 글로벌 기업이 원천기술을 다수 확보한 상황에서 5G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중소기업은 향후 로열티 분쟁 표적이 될 전망이다.
23일 독일 특허 데이터업체 아이플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5G 표준필수특허 출원 수는 중국(34.02%), 한국(25.23%), 미국(13.91%), 핀란드(13.82%), 스웨덴(7.9%), 일본(4.93%) 순이다. 한국은 출원 특허 수에서 선두권이지만, 5G 핵심기술 확보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정재관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센터장은 “한국 출원 수는 상당하지만 5G 원천기술은 퀄컴,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이 선점했다”면서 “5G 디바이스를 개발하는데 글로벌 기업이 선점한 원천기술을 회피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5G 제품이 보급된 2~3년 후에는 로열티 분쟁이 급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5G 상용화로 산업계는 다시 한 번 기술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5G 로열티 분쟁이 본격화되면 파장은 업계 전반으로 퍼질 전망이다. 통신 특허 영역은 기존 전자제품에서 거의 모든 사물로 확장하고 있다. 통신기술과 밀접한 자율주행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통신 특허풀인 '아반치'는 과거 현대기아자동차에 통신기술 관련 특허 경고장을 발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국제 특허분쟁에 취약한 중소기업의 대응이다. 열악한 경영 여건으로 특허 소송 등에 대응력이 떨어진다. 대개 제대로 된 라이선스 협상을 하지 못하고 해외기업이 요구한 로열티를 그대로 지불한다.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분쟁에 대응할 전담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추가 로열티 지출은 경영에 큰 부담을 준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기술인 5G와 관련해 중소기업은 표준특허가 어떤 것인지, 타사가 선점한 특허가 유효한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정확하게 로열티를 얼마나 지불할 것인지, 협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제품 개발에 큰 과제”라고 설명했다.
정부 지원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 부처와 협단체가 창구를 열어놨다. 특허청,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은 중소기업 특허분쟁 컨설팅을 지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KEA는 데이터 바우처 사업, ICT지식재산경쟁력강화 사업으로 중소기업에 국제 특허 정보를 제공하거나 특허 이슈 대응을 돕는다.
그럼에도 현실은 척박하다. 지난해 전자업계는 H.265 코덱, 돌비 특허 로열티 분쟁을 겪었다. 국제 특허분쟁에 무방비한 국내 업계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업계의 특허 인식, 부족한 정책 홍보, 제한된 지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특허분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선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성병기 마루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는 “5G 적용범위가 광범위하고 특허권자도 여러 기업에 분포했다”면서 “국제 특허분쟁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산업에서 복잡한 형태로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특허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소기업이 대처할 수 있는 민간과 정부 공동 대응 플랫폼을 구축,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