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콘이 인수한 일본 샤프가 중국 광저우에 건설되고 있는 10.5세대 액정표시장치(LCD) 팹 가동 일정을 지연시키면서 국내 장비 업체에 대금 지급을 미루고 잔금 할인을 강요하는 등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된 국내 장비 기업만 10개사 이상, 피해 금액은 1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샤프는 잔금 할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2년 후에 장비를 입고하라고 지시하고 있어 사실상 국내 장비 기업이 악성 재고를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 기업들이 샤프로부터 장비 납품 대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기업당 최소 수십억원에서 최대 100억원 이상 규모의 장비 공급을 계약했지만 샤프가 계약금의 60%에 해당하는 비용만 지불한 뒤 나머지 금액에 대해 사실상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샤프(사카이SIO인터내셔널)는 이달 광저우 10.5세대 LCD 공장을 운영키로 했지만 최근 일정을 약 6개월 늦췄다. 이 과정에서 샤프가 대금 지급을 미루면서 협력사에 보상급을 지급하기는커녕 큰 폭의 대금 할인을 요구,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 장비업계에 따르면 샤프는 국내외 장비 협력사들에 아직 지급하지 않은 잔금 40%에 대해 6~12% 할인을 요구했다.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주문한 장비를 2년 뒤에 입고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공급 계약을 맺은 협력사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잔금 할인이라는 전례 없는 요구를 받은 데다 이를 거부하면 사실상 제작하고 있거나 제작을 마친 장비를 악성 재고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비는 각 제조사 요구에 맞게 맞춤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동일한 장비를 다른 패널사에 판매하기도 어렵다. 다른 패널사에 판매하려면 다시 개조가 필요해서 추가 제작비가 들기 때문에 해당 비용은 장비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통상 주문한 장비를 취소하거나 장비 입고일이 일정 수준 이상 늦어지면 발주사는 장비 협력사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례다. 제품 입고가 늦어지면 장비사에 재고 관리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국 패널사는 한국과 달리 장비 공급액의 80%만 지급하고 나머지 10%는 제품 설치 후, 나머지 10%는 최종 양산에 들어가면 지급하는 관례가 있다. 양산까지는 1년 남짓한 시간이 걸리고, 양산해도 제때 지급하지 않거나 생산 성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아예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떼인 돈'이 되지 않을까 우려할 수밖에 없다.
샤프는 현지 관례보다 적은 60%만 지급한 데다 잔금 할인까지 요구하고 있어 국내 협력사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막상 마땅한 대처 방안을 찾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금 할인 요구를 거절하면 2년 뒤에도 장비 납품이 가능할지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샤프가 내년 4월에 가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협력사에 2년 뒤 납품을 통보한 것을 감안하면 실제 언제부터 가동할지 불투명해서 불안감이 크다”면서 “가뜩이나 디스플레이 투자가 위축돼 실적도 좋지 않은데 예기치 않게 영업이익이 줄어들 수도 있다”며 우려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협회사뿐만 아니라 비회원사까지 합치면 피해 기업과 금액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협력사 개별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협회가 나서서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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