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핀란드로부터 한국에 낭보가 전해졌다. SK텔레콤이 유럽 전역에 1400㎞ 규모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소식이었다. 양자물리학 발상지이자 양자기술 종주국에 기술을 역수출한 것이라 쾌거로 받아들여졌다.
SK텔레콤이 인수한 스위스 자회사 IDQ가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SK텔레콤의 8년간 연구개발과 투자도 배경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SK텔레콤은 양자암호통신이 상용 통신망에서 문제없이 작동하도록 하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했다.
SK텔레콤 행보는 국내에서 이례적 사례라고 설명하는 게 적절할 정도다. SK텔레콤은 2005년 당시 2세대(2G) 휴대폰이 도청된다는 국회 지적에 따라 도청이 불가능한 통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고 곧 잊혀졌다.
그럼에도 소수의 담당자가 천착한 결과 2011년 '퀀텀 테크랩'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유럽에 기술을 수출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SK텔레콤이 유럽에 수출했다고 우리나라 양자 관련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부하기에는 부족하다.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양자산업 주요 분야에서 기술격차가 상당하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 따르면 양자정보통신에서 미국 기술력을 100%로 간주할 때 우리나라는 73.6%에 불과하다. 유럽과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86.1%)보다 낮은 수준이다. 2.6년 뒤에서 쫓아가는 상황이다.
가장 기술격차가 큰 분야는 양자컴퓨터다. 미국을 100%로 간주하면, 기초기술은 71.6%, 응용기술은 64.1%, 사업화역량은 61.6%에 그치고 있다. 미국을 따라잡는 데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센서 분야도 선진국과 기술격차가 2.7년에 이른다.
이처럼 기술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진 것은 양자산업에 대한 정부 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10여년 전부터 양자산업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투자를 시작, 최근에는 미래 먹을거리를 넘어 국가안보 차원에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국가양자주도법'을 의결하고 5년간 최대 12억달러(1조4000억원)를 양자기술 개발에 투자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해 10월 산하기구 '퀀텀 플래그십'을 설립하고 10년간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 투자규모는 5년간 1000억위안(약 17조원)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초 양자컴퓨터 투자 계획을 마련하고 5년간 44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조 단위 투자계획을 밝힌 선진국과 비교가 무색할 정도다.
우리나라도 투자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5000억원대 국책과제를 마련하고 장기적인 양자산업 육성 계획을 마련했지만 2년 뒤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정부의 양자기술 투자가 미뤄지면서 연구개발, 기술력, 전문인력 부족 사태는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극소수에 불과했던 인재도 기업 양자연구에서 손을 떼거나 한국을 등지는 사례가 허다하다. 양자기술 연구 인력이 4만명에 이른다는 EU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선진국 양자기술 투자 계획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