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원전 40년史 타임캡슐' 고리 1호기…549조 해체 산업 밝힌다

고리1호기 전경.
고리1호기 전경.

지난 29일 고리원전 1호기는 해체를 앞두고 가동이 멈춰 있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힘차게 가동중인 고리 2호기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원전이라는 안전 특수성 탓인지 고요함과 함께 긴장감이 공존했다. '원전 해체'라는 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위한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의 결연한 각오마저 느껴졌다.

울산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29일 처음 상업운전을 개시한 국내 첫 원전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 21번째 원전 보유국 반열에 오르며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고리 1호기 건설은 총 1560억원이 투입된 대규모 사업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 4배를 웃돌았다. 1971년 정부 총 예산의 30% 수준이다. 그동안 1560억㎾h 전기를 생산, 부산지역 전체가 8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공급했다. 그리고 2017년 6월 18일 영구 정지되면서 40년 만에 호흡을 멈췄다.

고리 1호기 터빈룸에는 2년 전까지 증기 힘으로 돌아갔을 터빈이 기존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각종 배관과 설비는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였다. 현장에선 직원 7명씩 조를 이뤄 3교대로 24시간 근무를 서고 있다. 원자로 가동은 멈췄지만 직원들은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냉각계통, 전력계통, 방사선감시 계통, 공기조화계통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느라 변함없이 분주했다. 주제어실 곳곳에 붙은 '영구정지' 스티커와 숫자 '0'을 나타내는 제어반 원자로 출력은 마지막 작별이 임박했음을 암시했다.

정부와 한수원은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원전 해체'라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 미국·독일·스위스·일본 등과 비교하면 후발주자다. 이미 미국은 원전 16기(상업용 6기) 해체 경험을 갖고 있다. 2030년까지 영구 정지되는 원전 11기를 통해 핵심 기술을 갖추고 세계로 무대를 넓힌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향후 100년간 무려 549조원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 고리 1호기 해체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래서인지 한수원 직원은 손 때 묻은 고리 1호기와 아쉬운 작별을 준비하면서도 미래 시장 개척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남달랐다.

풀어야 할 숙제도 분명했다. 원전 해체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현재 습식저장시설에 잠겨 있는 사용후핵연료 485다발을 건식저장시설(맥스터)로 옮겨야 한다. 아직 첫 단추도 꿰지 못한 상태다. 정부는 2022년 6월까지 최종 해체계획서을 승인한 후 해체작업에 착수, 사용후핵연료 반출과정을 거쳐 2032년에 해체를 완료하는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목표기일은 순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현장관계자 설명이다. 원전 1기 해체에는 최소 15년 6개월 이상이 소요되는데 맥스터 건설(공사기간 7년) 허가조차가 언제 마무리될 지 알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당면한 과제다. 해체에 필요한 상용화 기술 58개 중 아직 10여개가 부족하다.

고리 1호기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권양택 한수원 고리발전본부 제1발전소장은 “고리 1호기는 저와 우리나라 원전의 40년을 담은 타임캡슐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투명한 원전해체, 고리본부가 안전하게 자연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라는 문구도 눈에 들어온다. 왠지 모를 만감이 교차했지만 우리나라 원전 산업 뿌리가 된 고리 1호기가 이제 원전 해체 산업을 밝히는 등대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