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도 방문도 안돼” 의료계 반대에 사업 후퇴

신안군 선도 원격의료 시스템을 이용해 의사와 환자간 원격진료가 이뤄지고 있다(자료: 비트컴퓨터)
신안군 선도 원격의료 시스템을 이용해 의사와 환자간 원격진료가 이뤄지고 있다(자료: 비트컴퓨터)

정부 원격·방문 진료 사업이 의료계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후퇴하고 있다. 환자 안전을 내세운 의료계 주장에 진단·처방을 제외한 원격 모니터링 사업으로 재추진하지만, 이 역시 반대 목소리가 높다. 원격·방문 진료 정의부터 방법, 자격 등 상세한 설계를 바탕으로 의료계 설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31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추진하는 원격진료, 방문진료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7월 원격진료 실증특례사업으로 지정된 강원도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은 석 달이 지났지만 의사반대로 한걸음도 못 나가고 있다. 정부 발표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물론 지역 의사단체까지 강력하게 반발한 데 이어 불참을 선언했다. 원격진료 참여 의사를 밝힌 의원이 없어 시행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강원도는 진단, 처방이 없는 단순 모니터링으로 사업 방향을 바꿔 참여기관을 다시 모집할 계획이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기존 진단, 처방 기능 대신에 혈당이나 혈압 등을 체크하는 모니터링으로 사업을 재추진할 예정”이라면서 “이를 근거로 의원 참여를 유도해 이른 시일 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원격진료 시범 사업도 진통을 겪었다. 8월 복지부와 전북 완주군은 운주·화산 지역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공중보건의가 원격으로 진단하고 방문간호사가 처방약을 전달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키로 했다. 이 역시 지역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사업은 전면 보류됐다. 의사-간호사 간 협진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간호사가 처방약을 들고 방문하는 것이 의료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처방 없이 간호사가 방문해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모니터링 기능만 수행하기로 합의하고 지난달 간신히 첫 발을 뗐다.

원격진료 시스템(자료: 전자신문 DB)
원격진료 시스템(자료: 전자신문 DB)

복지부 관계자는 “2014년부터 의료 취약지 원격진료 사업을 수행했는데 올해 의사-간호사 원격 처방까지 이뤄지면서 의사단체 반대가 시작됐다”면서 “간호사 처방이 문제가 되니 모니터링 위주로 진행하며, 추후 진단이나 처방으로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방문진료 사업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지난해 11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의를 통과하면서 건강보험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거동이 불편한 경우 방문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방문진료 수가 책정이 완료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일차의료 왕진 수가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왕진 1회당 8만원에서 11만5000원 선에서 운영할 계획을 발표했지만 의사들은 참여 보이콧을 선언했다.

의협은 “정부 재택의료 활성화 추진 계획안은 국민 건강권 고려보다 건강보험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경제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라면서 “의료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재택의료 활성화 추진 계획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단체는 원격·진료가 대면진료에 벗어나는 행위로, 환자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진료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과 수가를 낮추는 작용을 하면서 1차 의료기관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렸다.

조재형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원격진료나 방문진료는 만성질환 관리에 필요한 요소지만, 정부는 이를 통해 수가를 낮추려는 시도를 하면서 의료계 반대가 심하다”면서 “결국 충분히 돈(수가)을 준다면 반대할 명분이 줄어드는데 원격진료 대상, 방법, 자격, 비용 등을 명확히 설계해 의료계와 타협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