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치오다구 위치한 과학기술관은 매년 11월 첫 주 수요일엔 세계 지식재산(IP) 관련 관계자로 붐빈다. 일본 최대 IP 서비스 산업 행사인 '특허·정보 페어&콘퍼런스(PIFC)'에 각국 IP 서비스 관련 기업이 특허 관리 솔루션, 번역 서비스 등을 선보이며 정보 교환, 영업에 나선다.
PIFC 2019가 개막한 6일 아침부터 각국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연례행사다 보니 자주 방문하는 관계자끼리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본 발명진흥협회와 일본특허정보기구 등이 개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28회째다. 지난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중국 지식재산 연례 컨퍼런스(CIPAC)'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IP서비스 업계 시선이 쏠린다. 글로벌 기업의 최신 기술과 비지니스 모델 관련 동향을 한 발 앞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는 우리 기업과 시장개척단을 꾸려 행사에 참가했다. 국내 IP서비스업계의 해외 수주를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다. 시장개척단엔 번역, 조사·분석 분야 기업이 참여했다. 지난해 2년 연속 100만달러 내외 실적을 올리면서 일본 시장 내 입지를 넓히고 있다.
상황은 녹록치만은 않다. 일본 시장이 요구하는 일어·영어 번역, 일어·중국어 번역과 조사·분석 분야에도 중국 기업 바람이 거세다. 올해도 중국 기업은 10여개 부스를 꾸리고 참가했다.
김수천 도원닷컴 대표는 “일본 시장은 우리 IP 서비스 기업의 역량이 통할 수 있는 좋은 시장이지만 최근 중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다”면서 “일본, 중국 기업이 상대국에서 특허 출원을 크게 늘리면서 자국 기업에게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 기업도 번역, 조사 품질과 가격 경쟁력 등을 기반으로 일본 시장에서 접점을 확대하는 것이 단기 대응책”이라면서 “이런 자리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참가 기업 가운데 관람객의 눈길을 끈 곳은 파나소닉과 후지쯔다. 이들 기업은 인공지능(AI)라는 공동의 도전 앞에 협력을 택했다.
IP 솔루션 품질은 데이터 분석력이 좌우한다. IP 분석 솔루션 시장에서 빅데이터, AI 기술 도입은 일상화된 이야기다.
파나소닉과 후지쯔는 각자 보유한 AI 기술, 특허 분석 경쟁력을 기반으로 IP 분석 솔루션을 공동 개발했다. IP분야에서 대기 업간 협력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인 첫 사례다. 솔루션은 후지쯔의 AI 검색 엔진이 기반이다. 이를 각사 특허 분석 솔루션에 적용, 최적화했다.
미츠비시 전기의 특허 조사에 실제 적용, 개선을 거쳤다. 솔루션은 단순 키워드 검색이 아닌 문장까지 분석한다. 검색자가 원하는 내용을 문장으로 질문 또는 검색하면 특허 문서와의 유사성을 분석해 구축한 '지식 구조 모델'에 따라 검색이 진행된다. 지식 구조 모델은 사전에 방대한 특허 기술을 학습하고 특허 요약, 청구항 등 각 항목의 특성도 반영하기 때문에 기존 대비 검색 정확도가 2배 이상 개선됐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대기업 간 협력은 우리에겐 위기이자 기회다. 시장에서 이들 기업의 솔루션이 위력을 발휘하면 결국 우리 기업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이들 행보에 대응하며 국내에서도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해 다양한 서비스와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는 동인이 될 수 있다.
허재관 전략기술경영연구원 회장은 “특허 분석 시장에서 대기업이 협력해 AI 기반 솔루션을 선보인 첫 사례가 나왔다”면서 “계열사 등에 솔루션을 보급하며 실적과 후속 개발을 하고 있고 토요타 기술개발 등 타 기업도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회장은 “우리나라도 IT, 특허 기업 간 협력을 확대하며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일본)=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