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톱박스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국산화됐다. AP는 컴퓨터 CPU처럼 셋톱박스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다. 그동안 국내 출시된 셋톱박스에는 외산 반도체가 사용됐지만 국내 기업이 힘을 뭉쳐 국산화에 성공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KT가 출시하는 IPTV 셋톱박스 'UHD4'에 텔레칩스가 만든 AP가 탑재된다.
초고화질(UHD) 방송을 지원하는 이 셋톱박스는 한 손에 들어갈 정도로 크기가 작고 무선(와이파이) 기반으로 집안 어디서든 쉽게 설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는 20일 출시되는 이 셋톱박스에는 국내 반도체 전문 업체인 텔레칩스의 '라이언(Lion)' 칩이 적용됐다.
통상 AP로 불리는 이 칩은 컴퓨터 CPU 역할처럼 셋톱박스가 방송을 수신하고 각종 멀티미디어를 재생할 수 있게 신호 및 데이터를 처리하는 반도체다.
텔레칩스 설계에, 삼성전자 14나노(nm) 핀펫(FinFET) 파운드리 공정으로 제조돼 고성능을 지원하면서도 초저전력이 구현됐다.
국산 AP가 탑재된 셋톱박스가 출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개발 시도는 몇 차례 있었지만 최종 완제품이 시판된 적은 없었다.
국내 셋톱박스 산업은 삼성전자, 휴맥스, 가온미디어 등이 해외에 진출하며 글로벌로 성장했다. 하지만 핵심 부품인 AP는 국산화되지 못했다. 브로드컴과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시장을 선점하며 진입장벽을 쌓았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계 역시 기반이 취약해 전량 외산에 의존해온 구조였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책과제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KT와 텔레칩스는 이 틀을 깨기 위해 지난 2년 전부터 협력했다. 텔레칩스가 셋톱박스에 AP를 공급한 사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KT는 셋톱박스 핵심칩 국산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텔레칩스 역시 자동차 전장 중심의 현재 사업 구조를 셋톱박스로 확대, 사업 다각화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상당한 자원을 투자, 성과를 낼 수 있었다.
KT, 텔레칩스 외에도 국내 이노피아테크가 셋톱박스 제조를 맡았고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협력으로 최종 완성됐다.
이번 셋톱박스 상용화는 국내 첫 국산화 사례인 데다, 브로드컴 중심의 외산 칩에 대한 의존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성능과 안정화가 확인되면 칩 불균형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전망이다. KT 외에도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는 이미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브로드컴 대신 시냅틱스 AP 기반 셋톱박스를 도입한 상태다.
텔레칩스는 KT뿐 아니라 SK브로드밴드 차세대 셋톱박스에도 AP 공급이 확정돼 제조사와 개발 중이다. 국내 IPTV 셋톱박스 시장에서 레퍼런스를 쌓은 뒤 글로벌 IPTV 및 위성방송 셋톱박스 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다.
김성재 텔레칩스 사업부장은 “KT의 높은 기술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고성능 영상 재생 능력과 멀티태스킹, 보안 강화 기술 등을 확보했다”며 “동남아시아 및 중동 위성 시장과 북미, 유럽 IPTV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