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에게는 사태가 벌어진 후에 뒷수습하는 유전자라도 있는 것일까. 사태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처럼 한국 사회 민낯을 적절히 드러낸 용어도 드물 것이다. '드론 공격'이야말로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될까 벌써부터 두렵다.
드론 공격은 현재진행형이다. 9월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원유저장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고 국제유가가 급증하자 세계는 드론 위협이 실제한다는 사실에 몸서리쳤다. 지난해에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연설 도중 드론 공격을 받았으며, 올 초 영국 공항에 드론이 침입해 당국을 긴장시켰다.
이달 초 개봉한 영화 '엔젤 해즈 폴른'은 드론 공격을 실감나게 다뤘다. 호수에서 휴가를 즐기는 미국 대통령에게 박쥐 떼처럼 달려드는 드론 공격 장면이 압권이다. 프로펠러가 달려 낮게 떠가는 드론은 아마 공군 레이다망에도 걸리지 않는 모양이다. 걸렸다한들 육중한 전투기가 날아오려면 한참 시간이 걸렸을 테다. 사건은 이미 벌어지고 공격자는 자취를 감춘다. 이것이 현대의 테러이고, 과거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엔젤 해즈 폴른은 이후 장면이 바뀌고 틀에 박힌 음모론을 따라가지만 우리에게는 드론 공격 위험성을 깊게 각인시킨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으나 우리나라도 드론 공격 안전지대가 아니다. 몇 천원짜리 풍등 하나에 원유저장시설이 박살나는 경험도 했거니와 실로 전국 각지에 노출된 국가주요시설이 너무도 많다. 누군가 드론 공격을 감행한다면 대처가 가능한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드론 공격 위험성을 지적한 경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체계적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두가 인식은 하지만 결정적인 행동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학 숙제처럼 미루기만 할 뿐이다. 국회에서 관련법이 발의됐지만 정기국회가 끝나가는 마당에 통과를 확신하기 어렵다.
드론은 기본적으로 전파를 통해 조종되므로 드론을 제압하려면 전파를 차단해야 하는데 현행법으로는 불법이다. 불법을 제압하는 행위가 불법이 되는 고약한 상황에 처했다. 위험지역에 미확인 드론이 출몰해도 테러 목적이 확인되지 않으면 파괴하기도 어렵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한가한 발상이 아닌가 싶지만 현실이 그렇다. 위험지역에 드론이 등장하면 어서 테러를 일으키기를 바라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사업가는 세상을 한 발 앞서고, 시인은 세상을 두 발 앞선다는 말이 있다. 기업도 나름 빠르게 세상을 바꿔가지만 예술의 상상력은 이보다 더 앞선 미래를 그린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제도는 늘 세상을 한 발 뒤에서 쫓아가니 우리로서는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두 걸음 앞선 엔젤 해즈 폴른의 상상력이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