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용 배터리와 자율주행을 비롯해 연결성 발전으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반도체 업체 기술 수준은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가 차원에서 대표 미래 먹거리인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육성하고 완성차 업체와 협업을 도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11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융합 얼라이언스 세미나'에서 서정도 현대자동차 플랫폼제어기개발팀 팀장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 트렌드를 발표하고 국내 시스템 반도체 시장 육성이 필수임을 강조했다.
서 팀장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치열한 경쟁과 합종연횡에 대해서 설명했다. 자동차에 탑재되기 위해 설계되는 전기·전자 아키텍처는 지난 30년에 비해 상당히 고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차량 두뇌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MCU)의 경우, 1990년대에만 해도 180나노미터(㎚) 공정으로 제조된 싱글 코어 제품이었다. 그러나 최근 14나노 공정으로 제조된 인공지능(AI) 프로세서에는 한 칩 안에만 12개의 중앙처리장치, 2개 그래픽처리장치, 2개 지능형 반도체가 집적될 만큼 성능이 대폭 향상했다.
칩 개발이 오래 걸리는데다 비용이 올라가자 '원칩화'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칩 제조사가 고객사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에 사활을 거는 상황도 벌어진다. 생소한 기술이 생기면서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표준이 생기고 있다.
새로운 차량용 반도체 95%는 시스템 반도체다. 정보를 처리하고 연산하는 MCU, 이미지와 온도를 감지하는 센서,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전력 반도체 모두 5000여종에 달하는 시스템 반도체 제품군이다.
이 시장에서 한국 업체 역할은 상당히 미미하다. 이 시장은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등 미국, 유럽, 일본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
서 팀장은 “한국 메모리반도체는 세계 최강인 반면 국내 시스템반도체와 유관 산업 경쟁력은 취약하다”며 “과감한 기업 투자나 정부 지원, 전문 인력 수급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서 팀장은 자동차 산업에서 이미 활발하게 벌어진 글로벌 자동차 관련 업체 간 합종연횡, 인수합병(M&A) 사례에 주목했다. 서 팀장은 “엔비디아와 볼보, 크리와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와 반도체 회사 간 협력은 물론, 칩 업체들의 M&A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게 업계 트렌드가 됐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도 반도체 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인피니언과 2007년 제휴를 맺고 핵심 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에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는 국내 반도체 회사와도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업체들의 기술 완성도가 양산에 적용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다.
서 팀장은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빠르게 기술 수준을 올려서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과감한 투자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시스템반도체 융합 얼라이언스 세미나는 지난 4월 정부 시스템반도체 육성 방안 일환으로 열렸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기술과 국내 반도체 생태계 상생 방안 발표, LG전자의 센서 기술 소개도 함께 열려 업계 관계자의 주목을 받았다.
유정열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축사에서 “시스템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중 핵심이며,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라서 “정부도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고, 차세대 기술 확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