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한국 금융 인프라 마지막 퍼즐, 제로페이 '2020년을 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즐비하게 늘어선 툭툭이. 관광객들의 90% 이상이 교통수단으로 툭툭이를 사용한다. 그런데 최근 캄보디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독일 한 핀테크 기업이 재래화된 툭툭이에 지불결제 수단을 넣었다. 우리나라 카카오 택시 같은 플랫폼을 툭툭이에 결합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툭툭이를 호출하고 신용카드와 QR, IC카드로 결제가 가능해졌다. 당연히 구간별 요금을 협상해야 했던 재래식 결제 관행도 사라졌다.

핀테크 후진국으로 불렸던 캄보디아가 2~3년 후면, 한국을 능가하는 핀테크 금융 주도국으로 부상할 날도 머지 않았다.

글로벌하게 진행되는 스마트폰 기반 지불결제 수단 확산의 단면이다.

2019년, 한국에서는 제로페이에 대한 질타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시행 초기에 정책 목표를 위한 정부 주도 사업이 여러 문제점에 노출되기도 했지만 운영을 민간으로 넘기며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여전히 논란이 일부 진행 중이지만 반전된 분위기에 맞춰 소상공인 간편결제의 정책 목표 달성에 대한 평가와 향후 운영 방안에 대해 분석해 본다. -편집자 주-

[기획]한국 금융 인프라 마지막 퍼즐, 제로페이 '2020년을 보다'

◇제로페이는 진짜 불편하고 후진적 결제 방식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불편했지만, 개선이 빠르게 되고 있다. 후진적이지 않다가 결론이다.

제로페이는 스마트폰 기반 비대면 결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계좌이체를 통한 결제가 이뤄지는 시스템으로 신용카드 대비 결제수수료를 절감해준다.

최근 조사에서 세계 핀테크 경쟁력 도시 순위에 중국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가 세계 1·2위를 기록했다. 미국 뉴욕이 3위, 중국 광저우와 선전이 각각 4·5위를 차지했다. 20위까지 공개된 도시명에서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는 다시 말해 결제시장에서 현금IC카드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는 국가와 도시가 그만큼 혁신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주요 국가 지급수단별 이용 비중을 보면 미국, 독일 등의 직불카드 비중은 40%를 훌쩍 넘어섰지만 한국은 아직도 30% 미만에 머물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신용카드 결제 비중이 55%로 세계 1위다. 지급 결제 처리 과정에서 비효율이 초래되고, 이로 인한 비용 증가는 결국 사회 후생 감소로 이어진다. 제로페이가 출범한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현금IC 기반 핀테크 혁신 강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모델이 제로페이다.

일각에서는 제로페이가 민간과 경쟁하는 정부 정책의 부산물처럼 평가절하한다. 국회 정쟁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로페이는 결제사업자나 은행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이다. 직불결제 공공인프라다.

최근 정부에서 민간으로 모든 사업권이 이양되면서 참여방식과 플랫폼 고도화 작업이 세밀하게 추진되고 있다. 새해에는 기능도 대폭 확장될 전망이다. 결국 관치페이 논란과 불편하다는 주장은 가맹점 확보와 사업자 참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재단법인(SPC)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과 중소벤처기업부, 지방자치단체 등 주체간 역할 분담이 어느 때보다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올해의 전철을 다시 밟을 수 있다.

◇민간 참여를 강요했나?

민간 체제로 전환하면서 금융사에 일종의 출연금을 강요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취재 결과 은행은 물론 대형 결제 사업자, 중소형 사업자까지 직불 결제망을 깔아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핀테크 고속도로망이 깔려야 누구나 차별 없이 결제망을 이용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과 경감비용을 소상공인에게 환원하는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수 은행이 참여의사를 밝혔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도 출연금 참여를 확정한 곳이 상당수다.

제로페이 사업에는 21개 은행, 24개 전자금융사업자가 참여한다. 국내에서 공동 플랫폼 하나에 기존 금융사는 물론 핀테크 기업까지 다수가 참여한 사례는 거의 없다.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가맹점을 늘리면 막강한 지불결제 수단이 될 수 있다.

신용카드에 익숙한 고객은 습관을 바꾸기 힘들다. 그러나 제로페이의 1년간 실적을 보면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로페이는 직불결제 수단으로 1년도 채 안된 결제실적을 40년된 신용카드 실적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러나 과거 유사 서비스 중 하나인 은행권 현금 IC카드 결제 비중과 비교하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은행권 현금IC카드의 경우 2012년 11월 출시해 2015년 실적이 일평균 5억원대에 머물렀다. 반면에 제로페이는 지난 11월 기준 일평균 결제 4억2000만원을 달성해 3년 걸린 IC현금카드 결제 속도를 따라잡았다.

올해 1월 대비 제로페이 일평균 결제건수는 35배, 금액은 49배 증가했다. 가맹점도 30만개를 돌파했다.

◇2020년, 혁신 카드 꺼내든 제로페이

새해에 제로페이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새로운 시도가 연이어 펼쳐진다. 우선 기능 고도화다. 지자체를 시작으로 공공기관, 일반 법인, 정부 부처가 사용하는 제로페이 애플리케이션(앱)이 상용화된다.

각종 업무추진비 등을 법인카드 대신 제로페이로 결제할 수 있게 된다. 법인 대상으로 제로페이 플랫폼 사용이 본격화되면 제로페이 가맹점과 사용처가 크게 늘어난다.

거제시를 시작으로 다양한 지자체에서 법인 제로페이를 조만간 사용하기로 했다.

모바일 상품권도 제로페이에 유입된다.

전통시장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통 상품권이 제로페이와 결합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발생할 수 있다. 온누리상품권은 물론 지역화폐 사업까지 제로페이 플랫폼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용성을 확보하게 된다.

QR코드를 활용한 결제 방식 다변화도 추진한다. 스마트오더를 비롯 해외 결제와 연계해 이른바 크로스보더까지 영역을 확대한다. 온라인 제로페이를 통해 온·오프라인 모든 커머스 영역에서 제로페이를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풀어야 할 과제는?

물론 해결과제도 남아 있다. 가맹점 확대다. 가맹점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은 2020년 가맹점 50만개, 2021년 100만개를 목표로 잡았다. 100만개 이상 가맹점이 확보되면 제로페이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혜택을 확대할 여지가 생긴다. 제로페이를 왜 써야하는지 이유가 분명해진다. 혜택이 늘어나고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된다.

수많은 부가가치도 탑재해야 한다. 각종 바우처와 공과금 납부, 중장기로는 빅데이터 사업과 연계한 고부가 서비스를 발굴해야 한다.

제로페이 사업 취지는 명확하다. 소상공인의 비용절감이다. 신용카드보다 소비자 혜택이 없는데 사용할 리가 없다. 혜택을 많이 주기 위해서는 가맹점이 늘어야하고, 참여 사업자가 그만큼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경쟁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해야할 영역이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는 말이다.

중기부를 비롯해 정부는 이제 제로페이 사업을 민간에 이양한 만큼, 촘촘한 법·제도 지원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실제 지난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제로페이 최대 공약인 40% 소득공제 적용안을 부결했다. 소득공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접근과 대안부터 정부 부처가 마련해야 한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