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국내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사업 비중을 줄인다. 잇따른 화재로 시장 수요가 줄고 정상적인 영업도 어려운 상황에서 사업 동력이 약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맞물려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았던 ESS 산업이 화재로 인한 수요 감소와 공급 축소, 시장 및 산업 생태계 침체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커졌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최근 ESS사업부 산하에 미주와 유럽을 담당하는 '1담당'과 국내와 아시아 지역 영업을 담당하는 '2담당'을 단일 조직으로 통합했다. 2개 담당 조직을 단일화하면서 사업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LG화학은 내년 국내에 공급하는 ESS 배터리 물량도 축소할 전망이다. LG화학은 이미 해외에서 상당한 ESS 물량을 수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한정된 생산능력 내에서 LG화학이 국내보다 해외에 많은 물량을 배정하면서 공급 여력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LG화학과 거래하는 한 국내 중소 ESS업체 관계자는 “내년 사업계획을 위해 LG화학에 ESS용 배터리 모듈 공급을 재차 요청했지만 새해에 국내에 배정할 물량 확보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면서 “제품 수급을 위해 다방면으로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LG화학이 이슈가 많은 국내보다 해외 영업에 집중하면서 국내 모듈 공급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가 돈다”고 전했다.
LG화학은 국내 사업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ESS 화재에 대한 정부의 2차 조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데다 수요도 줄어든 상황에서 사업 둔화는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LG화학 관계자는 “ESS 관련 조직 변경은 업무 효율화를 위한 것”이라면서 “국내 사업을 축소할 계획은 전혀 없으며 2차 조사위 발표에 따라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국내 ESS 사업도 적극 공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단기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다. 화재 이후 국내 ESS 시장은 답보 상태다. 그동안 국내를 중심으로 ESS 사업을 키워온 배터리 제조사가 해외 공략에 집중할 경우 국내 산업이 활기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7년 이후 국내에 설치된 ESS 1215곳 중 삼성SDI가 652곳(53.7%), LG화학은 379곳(31.2%)에 배터리를 공급했으며 두 회사 비중은 85%에 이른다.
지난 6월 ESS 화재 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추가 화재가 이어지면서 정부는 2차 조사를 벌이고 있다. 화재 조사가 1년째 이어지는 사이 신규 발주는 씨가 말랐다. 조사 결과에 따라 배터리 제조사 손실 규모도 커질 수 있다. 또 내년 6월 이후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 하향 등 정부 지원도 축소될 예정이어서 국내 수요 감소도 불가피하다.
반면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등 각국이 친환경 기조 아래 ESS 설치 확대를 지원하고 있어 글로벌 시장은 고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도 변수가 큰 국내 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큰 해외 사업 비중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LG화학은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ESS 국내 매출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50% 성장하고 내년에도 30~40%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SDI 역시 장기적으로는 해외 매출 비중이 80~90%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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